미국 서부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에서 발생한 최악의 산불로 LA 중산층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수십 년간 축적한 재산과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비교적 저렴했던 시기에 주택을 구입하며 미래를 꿈꿨던 중산층 시민들은 이제 재건의 희망조차 불투명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산불은 초호화 주택이 밀집한 지역뿐만 아니라 교사, 간호사, 배관공 등 일반 중산층이 거주하던 지역까지 삼켜버렸다”면서 “이들 중 다수는 수십년 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집을 구입해 자산을 축적해왔지만, 이제 그 재산의 대부분을 잃었다”고 전했다.
실비아 스위니(69)와 그의 남편 밥 허니처치는 샌가브리엘 벨리의 언덕 기슭에 위치한 침실 3개짜리 집을 지난 2009년 78만 달러(약 11억4000만원)에 구입했다. 당시 이 집은 그들의 노후를 위한 안전자산이었다. 2023년 기준 이 집의 가치는 160만 달러(약 23억3900만원)로 두 배 이상 올랐지만, 이번 산불로 그들의 집은 우편함만 남긴 채 모두 불에 타버렸다. 그녀와 남편은 현재 남아있는 주택담보대출과 예상치 못한 추가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은퇴 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일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이번 산불로 인해 1만2000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거나 손상됐다. 특히 피해가 컸던 지역은 알타데나와 퍼시픽 팰리세이즈다. 알타데나는 과거 흑인 중산층 가족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던 지역이며, 퍼시픽 팰리세이즈는 초부유층이 대서양을 내려다보는 절벽에 저택을 지은 곳으로, 할리우드 스타들이 거주하는 고급 주택가로 유명하다.
산불로 캘리포니아 지역 주택난이 더 부각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캘리포니아는 산불 이전에도 심각한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WSJ에 따르면 이 지역의 주택 가격은 미국 평균의 두 배를 넘어섰고, 평균 임대료는 2297달러(약 336만원)로 전국 평균보다 33% 높았다. 이번 산불로 1만5000가구 이상이 집을 잃으면서 임대 시장은 더욱 치열해졌다. WSJ은 “산불 이후 임시 주택을 찾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치열한 임대 시장으로 몰려들며 임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일부 임대 물건은 월 2만5000달러에서 4만 달러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산불로 인해 해당 지역 임대료가 6% 이상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USC 루스크 부동산 센터의 리처드 그린 소장은 “LA는 최소 50만 채의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 산불로 인해 문제가 더욱 악화됐다”라고 말했다.
보험 문제도 재건을 어렵게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내 많은 보험사들이 최근 잦아진 산불로 인해 주택 보험 판매를 중단하거나 갱신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년 동안 캘리포니아주 상위 12개 보험사 중 7개사가 새로운 보험을 내놓지 않거나 기존 정책을 갱신하지 않음으로써 보장 범위를 줄였다”고 전했다. 보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재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퍼시픽 팰리세이즈에서 집을 잃은 조시 파픽(77)은 WSJ에 “보험으로 80만 달러를 받는다고 해도 이 지역에서 집을 다시 짓기엔 충분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산불 피해 지역 재건을 돕기 위해 일부 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 확대와 보험 시장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까지 산불로 24명이 숨졌다. 아직 화재 진압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캘리포니아 소방당국에 따르면 12일 기준 팰리세이즈 산불의 진압률은 11%, 이튼 산불의 진압률은 27% 수준이다. 산불로 인한 피해액은 200조원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