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의 데시 바우테르서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수리남 대통령실이 25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향년 79세. 바우테르서는 수리남의 독재자였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20년 형의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잠적한 상태였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찬드리카퍼사드 산토키 수리남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오늘 아침 정부 관계자로부터 바우테르서 전 대통령 별세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유족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
바우테르서의 전 경호원이자 후에 라이벌이 된 로니 브룬스윅 수리남 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바우테르서가 24일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다만 어디에서 사망했는지, 사망 원인 등은 밝히지 않았다. 수리남 현지 매체는 바우테르서가 알려지지 않은 병을 앓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바우테르서는 1945년 10월 13일 수리남 수도 파라마리보 인근 옛 사탕수수 농장에서 태어났다. 바우테르서는 1968년께 유럽에서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네덜란드로 떠나 군대에 입대했다. 당시 수리남은 네덜란드 식민 통치를 받고 있었다. 바우테르서는 네덜란드에서 군 생활을 한 뒤 1975년 수리남 독립 당시 조국에서 복무했다.
바우테르서는 이후 1980년 쿠데타를 일으켜 1987년까지 사실상 통치했다. 하지만 그는 1982년 반쿠데타를 염려, 군인들에게 반체제 인사 15명을 잡아서 고문하고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희생자 중에는 언론인, 교수, 변호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12월 살인’으로 불렸다. 이후 국제사회 압력으로 잠시 자리에서 물러났고, 수리남은 1987년 쿠데타 이후 첫 선거를 실시해 1988년 문민 통치로 복귀했다. 하지만 바우테르서는 1990년 2차 쿠데타로 1992년까지 재차 집권했다.
바우테르서는 ‘12월 살인’ 관련 재판을 받았다. 2007년 수리남 군사법원은 바우테르서와 다른 24명의 피고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해 바우테르서는 살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인정했으나, 직접적인 연루는 부인했다. 재판은 2015년 이상 지속됐고 그 기간 동안 바우테르서는 포퓰리즘을 활용, 2010년 총선 승리를 이끌었고, 대선 당선까지 이뤄냈다. 그리고 2020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다만, 바우테르서는 2000년 네덜란드 법정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마약밀매 죄로 징역 11년을 선고받았고, ‘12월 살인’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징역 20년형을 확정받았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았던 바우테르서 전 대통령은 “형 집행기관에 자진 출두하겠다”라고 거짓말한 뒤 올해 1월 잠적해 경찰 체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바우테르서의 아내는 기자들에게 “그는 감옥에 가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다.
바우테르서의 유족으로는 아내와 두 자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