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적 위기를 촉발한 인물, 윤석열은 누구인가”(FT), “한국 대통령은 왜 갑자기 계엄령을 선포했는가”(BBC), “한국의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했다가 해제했다. 왜?”(WP)

영미권 언론이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이 6시간 만에 해제된 상황을 1면으로 앞다퉈 보도했다. 외신은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이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고 분석하는 한편 국회에 막혀 계엄령을 해제한 것에 대해 “권위주의 향수에 도박한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는 것이 판명 났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문을 열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 뉴스1

◇ “보수 세력 결집 위한 절박한 정치적 도박”

우선 주요 외신은 윤 대통령 자체와 비상계엄을 선포한 배경을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대선에서 진보 성향의 경쟁자를 상대로 단 0.73% 차이로 간신히 이긴 윤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낮은 지지율과 야당이 장악한 의회에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했다”며 “보수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도박일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도 “윤 대통령이 심야 TV연설을 통해 반국가 세력과 북한의 위협을 언급하며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며 “하지만 이는 외부의 위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절박한 정치적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봤다. 영국 일간 가디언 역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바닥을 친 지지율에 맞서 벌인 절박한 도박이었던 듯하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국방부로 이전한다는 갑작스러운 결정을 했고, 국민의 지지를 거의 얻지 못했다”며 “2022년 핼로윈에는 이태원에서 159명이 사망한 압사 사고로 비판을 받았고, 의료 분야에도 위기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외신은 윤 대통령이 정치적 압박감에 비상계엄 선포라는 카드를 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윤 대통령이 2022년 5월 대통령으로 당선됐으나, 야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4월 이후 무능한 대통령이 됐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BBC는 “정부가 원하는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야당이 통과시킨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짚었다. 2024년 1월 기준,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법안의 29%만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기다 디올 가방 사건, 주가 조작 사건 등 각종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윤 대통령 지지율이 17% 초반으로 하락한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가디언은 “윤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해 전 국민이 이미 잠들었다고 생각했던 유령을 깨우고자 했다”며 “윤 대통령은 권위주의에 대한 그의 향수가 적어도 일부 정치권에서 공감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계엄령 해제가 통과된 것은 그의 계산이 잘못됐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4일 새벽 무장 계엄군이 국회를 나서고 있다. / 뉴스1

◇ 미국 등 동맹 관계에 영향, 北 악용 우려도 제기

비상계엄 사태로 미국,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워싱턴DC를 국빈 방문하는 등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한미 동맹을 강화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 최초로 나토(NATO) 회의에 참석했고, 미국·일본과 군사 및 안보 협력을 강화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을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칭하며 북한, 중국, 러시아에 대항하는 장벽으로 한국에 의지하면서 군사적 관계를 강화했다”며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시련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민주주의 대 독재를 외교 정책의 틀로 삼아온 바이든 대통령은 수년간 윤 대통령과 관계를 쌓고 중국, 북한, 러시아에 대해 잘 대처하기 위해 군사적 유대관계를 강화했으나, 이제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비상계엄 사태를 악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가디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군사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이용해 완전한 고립에서 구출돼 부활을 즐기고 있다”며 “김정은은 서울의 약점을 이용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시드니 사일러 전(前)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 담당관도 CNN에 “북한이 이 상황을 악용할 가능성에 대해 한국과 동맹국이 지켜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메이슨 리치 한국외대 교수는 로이터에 “윤 대통령은 한때 한국의 국제적 평판에 많은 초점을 맞춘 대통령이었지만, 이제는 한국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며 “금융 및 통화 시장, 외교 관계에서 한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