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26일(이하 현지 시각) 휴전 협상을 타결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공격하자,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지원한다며 하루 뒤인 지난해 10월 8일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전쟁을 시작한 지 416일 만이다. 휴전 성사로 양측의 교전과 공습은 27일 오전 4시부터 60일간 중단된다. 해당 기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영토에서 철수하고,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에서 약 30km 떨어진 리타니강 북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7일 소집한 안보 내각은 전날 오후 8시에 표결을 거친 헤즈볼라와의 휴전안을 최종 승인했다. 이어 미국이 초안을 만든 휴전 협상안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각각 휴전을 공식 선언했다.
◇ 휴전했지만, 레바논 재무장 가능성 제기
하지만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휴전은 말 그대로 휴전일 뿐 종전이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평화는 불안정할 가능성이 크다. 언제라도 끊어질 수 있는 반창고와도 같다”고 정의했다. 무엇보다 헤즈볼라가 이란으로부터 밀수한 무기를 이용해 재무장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리타니강과 유엔이 설정한 사실상의 국경인 블루라인 사이에 주둔할 레바논 정부군과 유엔평화유지군이 헤즈볼라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도 능력도 없다. 지난 20년 동안 레바논 정부군의 군사력은 헤즈볼라에 밀렸다.
물론 이번 휴전 협상에는 헤즈볼라가 재무장할 경우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대응할 권리가 명시돼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미국이 이를 승인하도록 압박했고, 미국이 ‘레바논 영토에서 오는 위협에 대응할 이스라엘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내용의 별도 서한을 제시하면서 휴전 협상이 타결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휴전 승인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헤즈볼라가 휴전 합의를 깬다면 우리는 이들을 공격할 것”이라며 “그들이 국경에 군사시설을 재건하거나, 땅굴을 파거나, 미사일을 실은 트럭을 들인다면 우리는 모든 형태의 군사력을 사용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FT는 “네타냐후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휴전의 지속가능성이 결정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2006년에도 비슷한 위협을 가했지만 지금은 매우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헤즈볼라는 2006년보다 약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스라엘이 지난 9월 헤즈볼라 대원들이 사용하는 수천 개의 호출기와 무전기를 폭발시키면서 통신망을 파괴했고, 30년 동안 헤즈볼라를 이끌어 온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한 상태다. 이처럼 헤즈볼라의 힘이 약화하면서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휴전 협상 전에 이스라엘과 휴전을 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레바논에서의 휴전은 헤즈볼라가 수개월간의 암살과 전장에서 손실로 약화해 협상 테이블에서 영향력을 잃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가능했다”며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서도 레바논에서의 휴전 협상은 자신의 지배력을 크게 약화하지 않을 것이기에 타협할 여유가 있었다”고 해석했다.
◇ 이스라엘·헤즈볼라 휴전으로 하마스 더 압박, 가자지구 휴전 힘들수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휴전 협상이 가자지구 내 휴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주요 외신의 평가다. 중동 평화 회담의 협상자로 활동했던 에런 데이비드 밀러는 NYT에 “헤즈볼라와의 협상은 네타냐후가 원했고, 헤즈볼라가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뤄졌으나 가자지구의 휴전 협상은 이와 다르다”고 했다. 네타냐후 지지자들은 전쟁 후 유대인 민간인을 가자지구에 정착시키고자 하며, 하마스가 완전히 패배하지 않고 전쟁이 종식되면 네타냐후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겠다고 위협하는 중이라는 정치적 배경도 가자지구에서 휴전이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네타냐후는 2020년 이후 뇌물 수수,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은 상태라 국내 입지가 좁다.
또한 하마스의 동맹인 헤즈볼라가 전투에서 철수하면서 하마스가 고립, 결국 하마스가 물러날 것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반영하듯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는 헤즈볼라가 자신들과 함께 싸우기를 바라고 있었다”며 “헤즈볼라가 사라지면 하마스는 홀로 남게 된다. 우리는 하마스에 대한 압력을 증가시킬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인질을 석방하는 신성한 사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네타냐후 총리 전기 작가이자 이스라엘 정치 논평가인 마잘 무알렘은 NYT에 “네타냐후 총리가 헤즈볼라와의 휴전 협상에 동의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을 동결하거나 외교적 지원을 철회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네타냐후 총리는 항상 시간을 벌고 책략을 꾸미는 사람이다. 이제 네타냐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 전까지 시간을 벌었다”고 설명했다.
여기다 하마스가 갑자기 이스라엘 인질을 내주거나 가자지구의 권력을 포기할 가능성도 낮아보인다. 하마스의 지도부 일부가 파괴됐음에도 하마스 지도자 일부는 전쟁 이후에도 하마스가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방식의 휴전을 고집 중이다. 이와 관련 하마스는 가자지구 내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모든 노력에 협조할 것이라면서도 이스라엘군의 완전한 철수, 이주민 귀환, 포로 교환 거래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하마스는 여전히 가자지구에서 정치적 역할을 하길 바라고 있으나, 이스라엘과 미국이 해당 조건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다만, 일부 이스라엘 정부 인사가 레바논과의 휴전 협정을 이용해 하마스와의 협정을 되살리려고 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소식통을 인용해 “제한된 수의 인질을 석방하는 단기 협정을 포함한 하마스와의 휴전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이스라엘 관리들은 레바논과의 휴전 협상을 마무리하는 동안 하마스와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집트와 관계를 재건하고자 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