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78)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지원군은 가족이다. 트럼프는 세 부인과의 사이에 3남 2녀를 뒀다. 그 중 첫 번째 부인인 이바나 트럼프(사망)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46) 트럼프그룹 수석부회장, 이방카 트럼프(43) 전 백악관 수석고문, 에릭 트럼프(40) 트럼프 그룹 부사장은 트럼프의 부동산 사업을 돕고 선거 활동도 지원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2016년, 2020년, 2024년까지 총 세 번의 대선에 출마하는 동안 트럼프 자녀들의 정치 지형은 바뀌었다. 트럼프 1기 중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백악관 수석고문으로 일하며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던 이방카와 그의 남편 재러드 쿠슈너는 이번 대선에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대신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 트럼프가 전면에 나섰다. 이에 트럼프 2기 때는 두 아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6일(현지 시각)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아들 배런 트럼프(왼쪽)와 함께 웨스트팜비치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선거 야간 감시 파티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그 배경에는 트럼프의 대선 구호였던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대한 지지 여부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 주니어와 에릭은 분명한 마가이지만, 이방카와 쿠슈너는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 장남·차남 뜨고 장녀 사라진 건, MAGA 때문

마가는 전통적인 공화당과 달리 미국이 그동안 행했던 국제 지도자 역할은 피하면서 고립주의와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다. 또한 정치 관례를 무시하는 거칠고 공격적인 정치 스타일을 추구한다.

트럼프 주니어는 트럼프와 이념적 지향점이 가장 유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트럼프의 자녀 중 마가를 가장 지지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에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디언은 “트럼프는 훨씬 더 권위주의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트럼프 주니어는 2016년보다 2024년에 훨씬 더 잘 맞는다”며 “트럼프 주니어는 열정적인 사람이고 그의 아버지처럼 유세 연설에서 심한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10년 동안 격렬하게 연설하고, 음모론을 소셜미디어(SNS)에서 퍼 나르고, 진보적 비평가를 자극한 아버지의 시대에 맞는 방식을 취했다”며 “에릭과 라라 트럼프 역시 마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방카와 쿠슈너는 마가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은 “이방카와 쿠슈너는 더 예의 바른 상류 사회 사람들이어서 마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누가 일할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척도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는) 마가 광신도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왼쪽), 차남 에릭 트럼프(오른쪽에서 두 번째), 에릭의 부인인 라라 트럼프(오른쪽). / 로이터

◇ MAGA 열렬한 지지자 트럼프 주니어, 핵심 실세 될 듯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선 트럼프 주니어가 핵심 실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7월 17일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되는 전당대회에서 연단에 올랐다. 이때 트럼프 주니어는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 유세 중이던 7월 13일 총격을 받고도 일어나 얼굴에 피가 묻은 채 주먹을 높이 치켜든 사진을 대형 화면에 띄우고 트럼프가 외쳤던 “파이트(Fight·싸우자)”를 외치며 호응을 유도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전처(前妻) 버네사 케이 트럼프(2018년 이혼) 사이에서 태어난 카이 매디슨 트럼프(17)를 전당대회 무대에 소개했고, 카이가 할아버지 트럼프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도록 하기도 했다. 이날 카이는 “우리 할아버지는 부모님 몰래 탄산음료나 사탕을 주고, 골프 실력을 자랑하기에 바쁘다”며 “여느 할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답니다”라고 했다. 이를 지켜보며 손녀 앞에서 무장 해제된 트럼프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일기도 했다.

이미 트럼프 주니어는 트럼프가 초선인 J.D.밴스 상원의원(오하이오)을 부통령 후보로 결정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대선 후보로 나섰던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도록 물밑에서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월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주니어는 케네디 주니어를 영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수개월 동안 구애를 펼쳤다”고 전했다.

다만, 트럼프 주니어는 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라 무대 뒤에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공화당 당원이었으나 트럼프 비판가로 변신한 조 윌시는 가디언에 “트럼프 주니어는 배후에서 엄청나게 활동하고 있고, 배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트럼프가 승리하면 ‘파워 브로커’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6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소감을 밝히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 로이터

차남 에릭은 트럼프 가문의 사업을 운영하는 동시에 트럼프 2기에서 활약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에릭 트럼프는 지난 10월, 트럼프가 암살 시도를 받았던 펜실베이니아 유세장에 등장해 주먹을 흔들며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를 외쳤다. 그는 형인 트럼프 주니어와 함께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참여할 고위 인사 예비 후보를 ‘충성심’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트럼프의 둘째 며느리이자 에릭의 부인인 라라 트럼프도 트럼프 2기에서 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라라 트럼프는 지난 3월 공화당 전국위원회 공동의장으로 임명돼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다. 라라 트럼프는 트럼프 지지 관련 행사에 지속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 장녀 이방카, 2021년 마이애미로 이사한 뒤 거리두기

반면 장녀 이방카와 사위 쿠슈너는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하는 7월 공화당 전당대회와 대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6일 트럼프가 당선 인사를 할 때 모습을 드러냈을 뿐 대선 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2016년과 2020년 전당대회 때 트럼프의 수락 연설 직전 연설했던 것과 상반된다. 대신 이방카는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킴 카다시안의 생일 파티,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프 베이조스의 60번째 생일 파티, 인도에서 열린 암바니의 결혼식장 등장하면서도 2024년 대선에선 철저하게 트럼프 대선 유세와 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이방카는 트럼프가 성 추문 관련 혐의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때도 재판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방카는 지난 7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정치의 어두운 세상을 피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항상 아버지를 사랑하고 지지할 것이지만, 앞으로는 정치 무대 밖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쿠슈너는 뉴욕타임스(NYT)가 10월 29일에 보도한 기사에서 “이방카는 워싱턴DC를 떠날 때 인생에서 정치의 장을 마무리하기로 했다”며 “이방카의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면 앞으로 4년 동안 세상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우선시하는 것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방카와 쿠슈너는 2021년 세 자녀와 함께 워싱턴DC를 떠나 마이애미로 이사했다.

그래픽=손민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