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제프 베이조스(60) 아마존 창업자는 미국 정치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베이조스는 2013년에 워싱턴포스트(WP)를 2억5000만 달러에 인수했고, 2016년에는 워싱턴에 있는 대저택을 사들였다. 여기다 아마존은 물론 우주기업 ‘블루오리진 창업가’라는 베이조스의 타이틀은 워싱턴에서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를 부풀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베이조스는 ‘워싱턴의 권력자’라는 지위를 얻지 못했다. 더군다나 베이조스는 WP에 압력을 가해 36년 만에 처음으로 WP가 올해 대선 지지 후보를 밝히지 못하도록 하는 등 베이조스는 미국 정계와 거리두기 중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 시각) “베이조스는 워싱턴에 갔지만, 결코 도착하지 못했다”며 “베이조스는 지난 10년 사이에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고, 아내와 이혼하고 약혼자와의 관계를 공개하면서 타블로이드 신문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베이조스는 워싱턴에서 열리는 행사가 있을 때나 아마존 경영이 비상일 경우에만 워싱턴을 들를 뿐이다. 베이조스는 현재 마이애미에 거주한다.
민주당 정치 전략가이나 허핑턴포스트의 전 워싱턴편집자인 힐러리 로젠은 “아마존은 엄청난 규제 문제를 갖고 있음에도 베이조스는 아마존 CEO였을 때조차 워싱턴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며 “베이조스가 사업이나 미디어산업의 리더가 되려고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리더가 되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NYT는 두 명의 아마존 전직 직원을 인용해 “베이조스가 아마존을 이끌고 있을 때조차도 베이조스는 정계를 대상으로 한 로비를 아마존 정책 책임자이자 전 백악관 대변인인 제이 카니와 등 다른 직원에게 맡겼다”고 전했다.
베이조스는 1994년 시애틀의 한 차고에서 아마존을 설립했다. 그는 온라인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을 전자상거래 기업, 온라인 스트리밍, 클라우드 컴퓨팅 및 인공지능(AI) 기업으로 키워냈다. 베이조스는 그 덕분에 2110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부호가 됐다.
베이조스가 그의 부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한 사례가 WP 인수다. 베이조스는 2013년 WP를 인수 후 편집권 독립을 약속했고 아마존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막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편집위원회의 입장은 이미 자신의 정치 성향과 일치한다며 편집위원회 입장을 존중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뉴스룸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수상을 한 기자들만 만나며 ‘신비한 인물’로 불렸다.
이후 베이조스는 2016년 10월 워싱턴에 2만7000제곱피트 규모의 옛 직물 박물관인 주택을 매입했다. 당시 베이조스는 WP와 더 가까워지길 바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베이조스가 매입한 주택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집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로 워싱턴 고위층이 사는 곳이었기에 베이조스가 워싱턴 사교모임의 중심에 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여기다 아마존은 2018년, 워싱턴 인근인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두 번째 본사를 세울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베이조스는 2021년 아마존 CEO에서 물러난 것은 물론 텍사스와 플로리다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블루오리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베이조스는 사적으로 이혼을 겪는 등 워싱턴과 점점 더 멀어지는 시간을 보냈다. 베이조스는 2019년 25년 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했다. 글고 지난해에는 방송 앵커 출신인 로렌 산체스와 약혼을 발표했다. 며칠 전 베이조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수년간 살던 시애틀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마이애미로 이사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일론 머스크(53)는 워싱턴 정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블루오리진과 경쟁하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NYT에 따르면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지난해 17개 연방기관과 약 100개의 계약을 맺고 3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NYT는 “베이조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머스크는 사업 제국을 키우고 워싱턴과 인연을 맺었다”며 “머스크는 정기적으로 고위 의원을 찾아 AI, 전기차, 글로벌 위성 통신, 우주여행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