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 중 형사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트럼프가 11월 치러질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13일(현지 시각) 유세 중 암살 시도를 받은 직후에도 의연하게 주먹을 들고 “싸우자”라고 외친 이후 트럼프의 인기는 더 치솟았다.
트럼프는 지난달 27일 TV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압도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론을 일으켰고, 선거 자금을 4억 달러 이상 모금했으며, 주요 경합주 7개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에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가 미국에서 지지를 얻고 있는 요인을 분석했다.
◇ 트럼프가 보여준 ‘남성성’
트럼프가 암살 시도 당시에 냉정하게 반응한 것만으로도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진짜 남자’라고 생각한다. 펜실베이니아주 체스터의 주택 도배업자이자 아버지인 그로스는 “그건 타고난 것”이라며 “트럼프는 남자다운 남자”라고 말했다. 공화당 전대에서는 이런 특징이 도드라졌다. 트럼프가 권투 선수처럼 전대장으로 들어오는 동안 지지자들은 ‘남자의 세상’(It’s a man’s world)이라고 외쳤다.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 심리학자들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던 2016년 당시에도 남성이 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전통적 남성관을 지지하는지 여부가 트럼프에 대한 지지 여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다 트럼프가 ‘남성성’을 부각하는 것은 일부 여성 유권자에게도 매력으로 작용했다.
FT는 “미국 정당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화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대선 후보가 남자다움을 증명하려는 시도도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라며 “조지 W 부시가 항공모함에 전투기로 착륙하거나,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을 도발하는 유권자를 향해 팔굽혀펴기를 해 보자며 응수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 종교 행사에 비유되는 트럼프의 연설과 호소력
트럼프가 등장하는 정치 행사는 일종의 종교 행사에 비유된다. 트럼프라는 하나의 대상을 향해 대중이 지지를 표시하는 것이 일종의 종교 행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위스콘신주 라크로스에 사는 멜리사 샘플(56)은 “처음으로 트럼프 행사에 갔을 때 너무 아름다워서 믿을 수 없었다. 모두가 가족 같았다”며 “그게 바로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다. 그 느낌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라 애벗이라는 여성 역시 “트럼프 행사는 소속감, 자신보다 특별하고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된다는 느끼게 한다”며 “통합되고 영감을 받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는 트럼프가 선거 연설을 즐기기에 비롯된 현상이다. 정치인 중 일부는 선거 연설을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정치에 입문하기도 전부터 방송했고, 대중 앞에서 연설을 잘하는 편이라고 평가받는다. 트럼프는 일반적으로 유머를 섞어 연설을 시작한다. 때로는 사악하게 웃기도 한다. 또한 경쟁자인 바이든 대통령의 말 더듬기를 조롱한다. 그러다 트럼프는 분노를 표시하기도 한다. 여기다 트럼프는 연설마다 불법 이민자를 언급하면서 “사람들이 불법 이민자로 인해 매일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며 “재선에 성공하면 추방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면 청중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장벽을 쌓아라”라고 외치는 패턴을 보인다.
FT는 “트럼프의 연설은 일종의 형식을 갖추고 있고, 청중의 분노를 끌어올린 뒤에 ‘지금 미국은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강조한 뒤 행동을 촉구하는 식으로 끝난다”고 설명했다. FT는 결국 트럼프는 “싸워라”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자신에게 표를 던지라고 한다”고 분석했다.
◇ 인플레이션·불법 이민자 증가에 대한 반발
경합주로 꼽히는 아이오와주의 정치 성향은 최근 보수적으로 변했다. 아이오와주는 2008년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선택했고, 2020년에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하지만 지금 아이오와주의 의회와 주지사 자리는 공화당이 차지했다. 법무장관도 공화당원이다. 이는 트럼프 캠프가 내세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공약이 먹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불법 이민자가 늘고, 인플레이션으로 서민의 생활이 힘겨워지면서 ‘과거의 미국’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향수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우위를 다지고 있는 애리조나주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4년 동안 애리조나의 주택과 임대료 가격은 미국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했다. 애리조나주에 사는 조 파라는 “이민과 경제 때문에 트럼프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피닉스에 사는 크리스 시슨 역시 “자동차 대출과 인플레이션이 4년 전과 달리 상승했다”며 “모든 것이 더 비싸진 상황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