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이미지. /로이터 연합뉴스

암호화폐를 유가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해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관할하게 하는 법안이 미국 상원에서 발의됐다.

신시아 루미스 공화당 상원의원과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민주당 상원의원은 7일(현지 시각)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책임 있는 금융 혁신 법안’을 발의했다고 미국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번 회기에서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작지만, 민주·공화당 양당 의원이 공동 발의한 데다 암호화폐 산업 전반을 다루고 있어 향후 미국 내 암호화폐 관련 입법에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법안은 암호화폐를 ‘보조 자산’(ancillary assets)으로, 즉 유가증권의 매매와 함께 제공되거나 판매되는 무형의 대체가능 자산으로 명시했다. 디지털 자산은 기업이 자본을 마련하려고 투자자 대상으로 발행한 증권처럼 작동하지 않는 한 ‘보조 자산’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이런 보조 자산은 미국 법에서 상품(commodities)으로 간주돼, 법안도 상품을 관할하는 CFTC가 암호화폐 규제에서 주된 역할을 하도록 규정했다.

양 의원실은 암호화폐 보유자가 배당이나 청산 관련 권한 등 기업 투자자가 향유하는 권한을 누리지 못하는 한 암호화폐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관할하는 증권으로 취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안은 스테이블 코인과 암호화폐 관련 공시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는 코인 발행량의 100%에 해당하는 준비금을 보유하고, 준비금으로 마련한 자산 내역을 공시해야 한다.

미 재무부는 제재를 준수해야 하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의 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또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암호화폐 채굴을 포함해 암호화폐 시장이 소비하는 에너지를 분석·보고해야 한다.

공시 사항으로는 ▲암호화폐 발행자의 이전 암호화폐 개발 경험 ▲과거 발행 암호화폐의 가격 추이 ▲예상 비용 ▲암호화폐 발행 경영진의 면면 ▲발행자의 부채 등이 규정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법안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내년에 협상의 출발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카우언 워싱턴 리서치 그룹의 재럿 세이버그 애널리스트는 “중요한 점은 암호화폐를 현 규제 체계로 포괄하려는 초당적 노력이 있다는 점”이라며 “이 법안은 어느 정당이 상원 또는 하원을 장악하는지에 상관없이 내년 토론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암호화폐를 SEC가 아닌 CFTC가 관할하게 한 점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도 이번 법안과 같은 논리로 주무부처가 CFTC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기에는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이 그동안 암호화폐 업계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대책도 내놓아 암호화폐 업계로부터 강한 반발을 산 것도 배경으로 지목된다.

블룸버그는 루미스 의원이 암호화폐의 우군으로 알려져 있어 이번 법안이 암호화폐 회사들에 우호적일 것이라고 이미 예상됐다고 지적했다.

양 의원실 대변인들은 이번 법안으로 SEC가 너무 많은 권한을 양도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해소하려고 SEC와 수 주간 협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금융개혁 지지 단체인 ‘베터 마켓츠’의 공동 설립자인 데니스 켈러허는 의회가 그동안 예산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아 현재 임무도 제대로 못 하는 CFTC에 암호화폐 규제를 맡긴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법안이 “뉴욕시의 범죄소탕 업무를 소도시 경찰에 아웃소싱하는 꼴”이라며 “가끔 경찰을 볼 수 있겠지만 대체로 범죄자들이 뉴욕시를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