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폭풍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며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

이에 개발도상국 등을 중심으로 폭동이나 시위 등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어 정치 불안이 가중된다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대통령 관저 몰려가 퇴진 요구하는 스리랑카 시위대 /콜롬보 AP=연합뉴스

AFP통신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13일(현지 시각) 지난 3월 소비자물가가 6.7% 올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1% 오른 수치로,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예상 물가상승률은 무려 6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3월에는 특히 식품 가격이 7.2%나 오르면서 아르헨티나 국민의 37%에 달하는 빈곤층 수천 명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페루에서도 에너지 가격 상승에 반발한 트럭 운전기사들이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며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라크·이집트 등 이슬람권에서는 라마단 기간 전부터 식료품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거리 시위가 이어졌다. 3월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 오른 터키에서도 제1야당 대표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에너지) 가격 인상을 철회할 때까지 전기요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중에서도 정치 혼란이 가장 큰 지역은 남아시아 지역이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 10일 임란 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이 가결됐다. 야당은 불신임의 근거 중 하나로 물가 급등을 꼽았다. 파키스탄은 올들어 소비자 물가가 10% 이상 뛰었는데, 특히 주 곡물인 밀을 주로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해왔던지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타격이 더 컸다.

스리랑카의 경우 주력산업이던 관광산업의 침체와 대외부채 폭증에 물가 폭등까지 겹치자 전국적 규모의 폭동이 발생하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스리랑카의 3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동월 대비 18.7%, 식품 물가는 30.2% 올랐다. 26명의 정부 각료가 모두 퇴임하기로 하고 디폴트 선언은 물론 IMF 등 국제기구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방침이지만, 대통령 집무실 입구까지 시위대에 점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아시아의 혼란이 더 큰 이유로는 가장 먼저 식료품 가격 상승이 거론된다. 세계적 곡창 지대인 우크라이나는 물론 러시아까지 전쟁으로 농작물 생산·수출에 차질을 빚으면서 지난달 글로벌 식품 가격은 2월 대비 34% 폭등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의 ‘이코노믹 인텔리전스 유닛’(EIU) 보고서는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비료와 곡물에 상당히 의존하는데 이로 인해 농업계에 차질이 유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유엔 보고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이 수입의 과반을 차지하는 국가는 모두 36개에 달하는데, 그중 최빈국들이 다수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 투자회사 애버딘의 빅터 자보 매니저를 인용해 “많은 나라에서 에너지와 식량 가격 인상이 정치와 사회 불안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지난 2010년 범(汎)아랍권의 반정부 시위 물결이었던 ‘아랍의 봄’이 식량 가격에서 촉발됐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미국평화연구소(USIP)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낙진’이 취약 국가와 빈곤층에 피해를 주고 정치적 불안과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이집트와 같은 나라에서 식품 가격은 ‘정치적 화약고’”라고 평가했다.

국가부채나 외환보유 상황도 남·동남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뇌관이다. 스리랑카와 파키스탄 모두 국가부채로 인한 외화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불신임 사유 중 하나로 ‘외환 고갈’이 적시됐다. 로이터는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의 외화보유액이 3월 말 기준 19억3000만 달러인데 오는 7월에 갚아야 할 채무액만 10억 달러 수준이고, 연말까지는 40억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세계은행의 마르첼로 에스테바오 글로벌 실무담당은 앞으로 12개월 동안 채무상환을 지속할 수 없는 신흥국이 10개국 넘게 출현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