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캐나다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독일 등 나머지 서방 진영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게 될 지 주목된다. 러시아는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과의 연쇄 협상이 결렬된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이어 북부 접경 국가인 벨라루스에도 병력을 집결시키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17일(현지 시각) 로이터 등에 따르면, 미국 초당파 상원의원단을 이끌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리처드 블루멘털 상원의원은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 후 기자들에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임기 중 가장 큰 실수를 범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얼마나 용감히 싸울 것인지를 간과한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스팅어 미사일 등 무기를 제공할 의사를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은 러시아에 괴멸적인 경제 제재를 가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무기를,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강력한 무기(lethal weapon)를 제공할 것이란 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상원 민주당은 지난 12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러시아를 제재토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우크라이나 주권수호법’으로 명명된 이 법안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적대행위를 강화할 시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여러 러시아 인사 및 기관들에 제재를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에밀리 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 법안 발의에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원 공화당도 지난 10일 우크라이나의 국방 능력을 강화하고 러시아의 안보보장 요구를 거부하는 내용의 ‘우크라이나 자주권 보장법’을 발의했다.

2022년 1월 13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남부 로스토프 지역에서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미국·유럽과 러시아 간 연쇄 회동이 성과 없이 종료되면서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연합뉴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도 이날 의회에 출석해 “우크라이나에 경량 대전차 방어 무기 시스템을 공급하기로 했다”며 “초도 물량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들어갔고 소규모 병력이 짧은 기간 무기 훈련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무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부연하지 않았다. 그는 이 무기가 전략 무기도 러시아에 대한 위협도 아닌 어디까지나 방어용이라고 강조하며 “러시아가 탱크를 앞세워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시 방어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캐나다도 이날 우크라이나에 소규모 특수부대를 파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글로벌뉴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한 나토 작전의 일환으로 이번 파견이 결정됐다며, 파견대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캐나다 외교관의 탈출을 지원하는 임무도 맡았다고 전했다. 캐나다 특수부대 본부 대변인은 글로벌뉴스의 보도에 대한 확인은 거부하면서도 부대가 2020년 가을 이후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해 왔다고 언급했다. 캐나다군은 2015년부터 서부 우크라이나에 200명 규모의 훈련부대를 주둔시켜왔다.

독일 새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수품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 중인 아나리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 드미트로 꿀레바 외무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각각의 적대 행위는 경제적, 전략적, 정치적으로 러시아에 높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며 “외교만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안드리 멜니크 주독일 우크라이나 대사는 이날 dp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방위를 위한 무기 공급을 승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향후 추이에 이목이 쏠린다. 독일 야당인 기독민주당(CDU)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당 대표 내정자는 전날 타게스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이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단서를 전제로 독일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하는 모든 일은 러시아의 굴복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로베르트 하벡 녹색당 공동대표도 선거 기간이던 지난해 6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對)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4번째)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2년 1월 11일 수도 키예프를 방문한 독일 총리 외교정책 보좌관 옌스 플뢰트너(오른쪽 3번째), 프랑스 대통령 외교 보좌관 에마뉘엘 본(오른쪽 4번째)과 면담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는 동부 돈바스 지역 분쟁 해결을 위해 러시아·독일·프랑스 정상과 4자회담을 열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보실

러시아는 현재 전례 없는 규모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다방면으로 포위 중”이라며 “관계자들은 이르면 이달 중 러시아가 군사작전을 시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지난 7일 보도했다. 함께 공개한 위성사진과 전력 상황을 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국경 삼면을 따라 포병·기갑부대와 차량화 보병부대 등을 배치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344㎞ 떨어진 러시아 국경도시 클린치에는 2개 차량화 보병사단을 전진 배치했다. 2014년 이후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활동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국경지대엔 지난해 러시아군 5개 전술 대대를 추가 배치했다. 이를 두고 NYT는 “최악의 경우 러시아군이 북쪽과 동쪽에서 키예프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지대와 맞닿아 있는 벨라루스에도 병력을 보낸 상태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이날 국영 매체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다음 달부터 러시아와 연합훈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번 훈련이 이미 지난달에 계획된 것이라면서도 “서방에서 넘어오는 병력을 차단하는 시나리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덧붙여 서방권의 군사 개입에 대비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