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이끄는 대만 민주진보당(민진당) 정부가 ‘중간평가’ 성격의 국민투표에서 간발의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대만 유권자들의 민심이 중국의 압박에 맞서 미국과의 관계 발전을 이룩하는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 10월 10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쌍십절(건국기념일) 경축 행사장에서 엄지를 치켜올리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에 부쳐진 안건은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와 ▲국민투표일과 대선일 연계 ▲타오위안 조초 해안에 건설 중인 천연가스 시설 이전 ▲제4원전 상업발전 개시 등 모두 4개였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찬성여론이 우세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 반대였다.

특히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의 수입은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다수의 대만인이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한 정부 결정을 이해하고 유지하자고 결론 내린 것이라 주목된다. 가축 성장 촉진제 성분인 락토파민은 어지럼증 등 부작용 탓에 대만에서 사용이 금지된 약물이다. 타이베이타임스에 따르면 안건별 반대표는 51.04∼52.84%에 달했다. 다만 투표율은 41.08∼41.09%로,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차이잉원 정부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FTA 체결을 추진하기 위해 야당인 국민당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해 말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전격 허용했다. 야당은 국민 건강을, 정부와 여당인 민진당은 중국의 군사적 압박에 맞선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각각 강조했는데, 대만인들은 결과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택한 것이다.

차이 총통은 18일 밤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국민투표에선 승자도 패자도 없으며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질문이 쟁점이었다”며 “대만인들은 세계로 나가 국제사회에 적극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평가했다.

4개 안건이 모두 부결되면서 차이잉원 정부의 국정 장악력은 더 커지게 됐다. 반면, 여당이 패배해 친중 성격인 야당의 재집권 가능성을 기대했던 중국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차이잉원 정부가 이번 국민투표 결과를 발판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면 양안 갈등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선거 결과 발표 직후 19일 사설에서 “민진당이 주민의 이익을 배신했다”며 “국민의 건강을 희생해 미국을 껴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락토파민 돼지고기를 수입하겠다는 태도는 국민 건강을 희생해 미국을 껴안고, 외세에 무엇이라도 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로 미국과 대만의 무역 협상이 속도를 내게 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만은 미국과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협상을 벌이고 있다. TIFA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전 단계로 평가된다. 미국이 대만과 이 협정을 맺으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문가 발언을 인용해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란 협상의 주요 걸림돌이 제거됐다”며 “대만 유권자들이 이 안건을 승인했다면 미국·대만 무역 관계에 중대한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WSJ는 임기를 2년여 남겨 둔 차이 총통의 영향력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