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지난 1990년 통일 이후 최초로 수도 베를린에 여성 시장이 탄생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16년 집권을 끝으로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각) 총선과 함께 치러진 지방선거의 결과다. 이로써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를 비롯해 독일은 유럽에서 여성 정치인이 수도를 이끄는 10번째 국가가 됐다. 이들은 변화에 대한 유권자의 열망과 젊은 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향후 대권 후보로 성장할 가능성도 커졌다.
27일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는 이번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사회민주당(SPD)이 정당 투표 결과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독일은 지방정부 역시 연방정부와 마찬가지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때문에 다수당 지위에 오른 사민당의 시장 후보 프란치스카 기파이(43) 전 여성가족청소년부 장관이 시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여성이 베를린 시장에 오른 건 통일 이전인 1947년 당시 서베를린 사례를 제외하고 처음이다.
독일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기파이 전 장관은 21.4%를 기록해 경쟁 후보인 녹색당(18.9%)의 베티나 자라쉬,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CDU·CSU) 보수 연합(18.1%)의 카이 베그너를 제치고 승리했다. 이에 따라 베를린은 지금처럼 좌파 연정을 꾸릴 가능성이 확실해졌다. 현재까지 베를린은 사민당과 녹색당, 좌파당(링케)의 연정으로 운영돼왔다.
유로뉴스는 이날 기파이의 당선 소식을 전하면서 유럽 주요 국가에서 여성 시장이 수도를 맡는 현상이 이미 보편화 했다고 보도했다. 베를린 선거를 기점으로 유럽연합(EU)의 3대 국가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수도를 모두 여성이 이끌게 됐다. 여기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웨덴 스톡홀름, 노르웨이 오슬로, 아일랜드 더블린, 불가리아 소피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룩셈부르크도 여성이 수도의 시장을 맡고 있다.
이미 독일 내에선 쾰른 시장을 비롯해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총리와 라인란트팔츠 주총리가 여성 정치인이다. 그 외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릴, 이탈리아 토리노, 스웨덴 말뫼 등 거점 도시에서 여성 정치인이 도시를 대표하고 있다. EU 산하 유럽양성평등연구소(EIGE)에 따르면 올해 EU 회원국 중 여성이 시장인 도시는 전체의 34.4%다. 10년 전보다 4%포인트 가량 오른 수치다. 특히 프랑스와 스웨덴, 스페인에선 여성 시장 비율이 40%를 넘는다. 2014년 최초의 여성 파리 시장에 당선돼 화제를 모았던 안 이달고(62) 파리 시장의 경우 내년 대선에 사회당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선거 결과 독일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성전환(트랜스젠더) 여성이 의회에 입성했다. 녹색당 소속 테사 갠서러(44)는 남동부 바이에른주의 뉘른베르크에서 당선인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13년부터 이 지역 지방의회에서 활동했으며 2018년 성전환 사실을 공개했다. 로이터통 신에 따르면 갠서리는 신분증에 적힌 성별 변경 절차를 간소화하고 동성애자(레즈비언) 어머니도 자녀를 입양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는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당선된 나이크 슬라윅(27)도 최초의 성전환 여성 의원에 이름을 올렸다. 슬라윅은 선거 과정에서 동성애 및 성소수자 혐오 범죄를 규탄하는 전국적인 행동을 계획하고 관련 법률 개선을 촉구했다. 독일은 1969년 동성애를 비(非)범죄화하고 2017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그러나 성 소수자에 대한 증오 범죄는 지난해 36% 증가하는 등 여전히 사회적 공격을 받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