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ETF(Exchange Traded Fund·상장지수펀드)에 유입된 자금이 올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연초부터 11월 15일(현지시각)까지 미 ETF에 유입된 자금은 총 9130억달러(약 1277조1957억원)로 조사됐다. 연말까지 한 달 반이 남은 채로, 역대 최대치인 2021년(9107억달러) 기록을 넘었다. 2019년 미 ETF 연간 순 유입액은 3369억달러(약 471조2894억원)에 그쳤는데, 올해 미 ETF 순 유입액은 1조달러(약 1398조90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2024년은 ETF에 있어서 획기적인 해”라고 보도했다.
# 글로벌 ETF 리서치 기업 ETFGI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 세계에서 신규 ETF 상품이 총 1426개 출시됐다. 전년 동기(1079개) 대비 32% 많은 신규 상품이 시장에 나타났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올해 9월 말 기준 전 세계 ETF 운용 자산(AUM)은 총 14조4600억달러(약 2경228조원)로, 역시 역대 최고치다. 한화로 2경원이 넘는 금액이다.
투자시장에서 ETF 인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ETF는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는 펀드를 의미한다. 개별 종목이 아닌 여러 종목을 묶어 투자 변동성을 줄이는 펀드 투자의 장점과 실시간으로 시장에서 매매하는 주식 투자의 장점을 합친 상품이다. 소액으로 채권이나 원유 등 접근하기 힘든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도 ETF 장점이다. ‘이코노미조선’은 국내외 자산운용사와 투자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ETF의 장점과 구체적인 투자 전략, 새해 유망한 투자처 등을 물었다.
“ETF, 펀드보다 우수하다”
ETF는 1990년 캐나다에서 처음 등장했다. 토론토 35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었다. 미국에선 1993년 ‘SPDR S&P500 ETF(SPY)’가 미국 내 최초의 ETF로 등장했다. S&P500을 추종하는 이 상품은 지난 10월 역대 ETF 중 최초로 운용 자산 6000억달러(약 839조3400억원)를 넘은 스테디셀러 상품이다. 국내에선 2002년 삼성자산운용이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KODEX200 ETF’를 최초로 선보였다. ETF가 급성장한 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로, 액티브 펀드의 수익률이 기초 지수를 상회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커지면서다. 지수를 쫓는 패시브 투자 바람이 불었고, 수수료가 저렴하면서 매매가 자유로운 ETF에 투자심리가 몰렸다. ETF 최대 시장은 미국이며, 미국에 투자한 ETF 자산이 약 70%다.
ETF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격언을 손쉽게 수행하도록 돕는다. 코스피200의 200개 종목 주식을 한 주씩 모두 사려면 약 1800만원이 필요한데, KODEX200 ETF에 투자하면 약 3만원으로 200개 종목에 투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ETF는 대부분 수수료가 0%대로 낮고, 절세 효과가 있다. 미국에선 펀드매니저가 펀드 내에서 증권을 사고팔 때 투자자에게 자본이득세가 발생하는데, ETF는 투자자가 매도할 때만 자본이득세가 부과돼 절세 효과가 크다. 한국에서도 연금 계좌로 ETF에 투자해 절세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널리 쓰인다.
마이클 맥클레리 발마크 파이낸셜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는 CNBC와 인터뷰에서 “간단히 말하자면, ETF 구조는 펀드보다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미 펀드 운용 자산 대비 미 ETF의 운용 자산 규모는 2014년 14%에서 올해 32%로 커졌다. 국내에서도 공모 펀드 대비 ETF 자산 비중이 2020년 30.1%에서 올해 9월 58.6%로 높아졌다. 주윤신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ETF는 직접투자와 공모 펀드 시장 일부를 대체하는 투자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분석했다.
파킹형·월 배당…ETF의 진화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ETF가 기본이라면, 펀드매니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자산을 운용하는 액티브 ETF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액티브 ETF의 대표 사례는 캐시 우드가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아크 인베스트먼트의 ‘이노베이션 ETF’다. 테슬라와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로쿠,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 등 혁신 기업을 담는다. 2020년 한 해 동안 15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기록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다만 액티브 ETF는 등락 폭도 큰 편이다. 이노베이션 ETF 역시 2021년 2월 고점(156.58달러) 대비 절반 이하인 60달러 선에 거래되고 있다.
주식형 ETF만 있는 것이 아니다. ETF가 부상하며 원유·금·은·농산물 등에 투자하는 원자재 ETF, 미국 장기채 등에 투자하는 채권형 ETF, 달러·엔화 등에 투자하는 통화형 ETF 등이 동시에 떠올랐다. 요즘 국내 투자자 사이에서 가장 각광받는 상품은 파킹형ETF다. 파킹형 ETF는 양도성 예금 증서(CD) 91일물 등 초단기 채권의 금리를 일할계산해 매일 복리로 반영하는 상품이다. 은행 예금 ‘파킹 통장’의 역할을 대체하면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코스콤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자금이 유입된 ETF 1·2위는 파킹형 ETF였다. ‘KODEX 머니마켓액티브’ ‘KODEX CD금리액티브(합성)’다. ‘KODEX 머니마켓액티브’는 상장 이후 76영업일 만에 순자산 3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처음으로 승인하며, 암호화폐 ETF에도 투자금이 몰렸다. 비트코인 상승세에 힘입어,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 ETF(IBIT)’는 연중 약 94.99% 올랐다. 미 ETF 수익률 1위다.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300억달러(약 41조9670억원) 자산 규모에 다다른 ETF로 기록됐다.
옵션 전략을 활용한 ETF도 눈에 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채권형 월 배당 ETF ‘TI-GER 미국30년국채커버드콜액티브(H) ETF’ 는 지난 10월 순자산이 1조원을 넘었다. 미국 장기채에 투자해 월 배당을 받는 상품으로, 국내 상장 커버드콜 ETF 중 최초로 순자산 1조원을 돌파했다. 커버드콜 ETF는 콜옵션(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 매도로 얻은 이익을 투자자에게 분배금으로 지급하는 상품이다. 콜옵션과 풋옵션(정해진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을 함께 활용해 투자 손실을 방어하는 버퍼형 ETF도 있다. 이익을 제한하는 대신, 미리 정해둔 특정 범위를 넘어서는 손실을 보전하는 상품이다.
비상계엄에 흔들리는 韓, 내년에도 美 유망
올해 ETF 시장에선 미국이 가장 돋보였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자금이 가장 많이 유입된 ETF는 1위가 ‘뱅가드 S&P500 ETF(VOO)’, 2위가 ‘아이셰어즈 코어 S&P500 ETF(IVV)’였다. S&P500 상승세에 힘입어, 두 ETF는 연중 각각 약 28% 상승했다. 코스콤에 따르면, 국내 수익률 상위권도 미 ETF가 휩쓸었다. 1위는 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ACE 미국빅테크TOP-7Plus레버리지(합성) ETF’로 수익률이 131.96%였다. 레버리지 상품을 제외한 수익률 1위는 ‘KODEX 미국서학개미’로, 76.65%다.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가 가장 선호하는 25종목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올해도 미 증시 기대감이 높다. 일레인 우 블랙록 APAC(아시아·태평양) 투자 총괄은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경제성장은 여전히 견고하다”며 새해에도 미국에 투자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김도형 삼성자산운용 ETF컨설팅본부장은 “실적이 있는 곳에 주가 상승이 있는데,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혁신과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 곳이 미국”이라며 새해에도 미 ETF가 인기를 끌 것으로 내다봤다. 신흥국 ETF 중에서는 인도, 대만, 중국, 브라질이 주목된다.
국내 증시는 코스피200을 쫓는 KODEX 200 ETF의 연중 수익률이 12월 3일 장 마감 기준 -6.2%를 기록하며 지지부진했다. 게다가 12월 3일 밤 이뤄진 비상계엄 여파로 투자심리가 냉각되는 분위기다. 12월 4일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증시에서 총 4200억원을 순매도했다. 미 증시에 상장된 ‘아이셰어즈 MSCI 한국 ETF(EWY)’는 비상계엄 이후 첫 거래일인 12월 3일(현지시각) 장 중 한때 7.1%까지 떨어졌다. 유동원 유안타증권 글로벌자산배분 본부장은 “외국인은 한국의 투자 위험이 커졌다고 판단할 것이고, 이는 국내 증시의 가치를 낮추는 원인이 될 것”이라며 “달러 자산 투자가 정말 중요한 시점” 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