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는 듯했던 중국 소비가 11월 들어 꺾여버렸다. 투자 지표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이는 등 중국 경제가 좀처럼 회복 모멘텀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하반기 들어 각종 경기 부양책을 쏟아냈음에도 확실한 효과가 보이지 않는 만큼, 보다 강력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16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11월 소매판매액이 4조3763억위안(약 863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1년 전 11월보다 3.0% 증가한 것으로, 전월(4.8%)보다 둔화했고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5.0%)도 크게 하회했다. 소매판매는 백화점, 편의점 등 다양한 유형의 소매점 판매 수치로, 내수 경기의 대표 가늠자다.
중국 내수 부진의 골이 다시 깊어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10.1%까지 치솟았던 소매판매 증가율은 해가 바뀐 후 계속 미끄러지더니, 급기야 6월 2.0%까지 내려앉았다. 이는 2022년 12월(-1.8%)이후 최저치다. 7~8월에도 2%대 증가율에 그치더니, 9월 들어 4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섰다. 그러다 10월 4.8%까지 상승했는데, 11월에 다시 꺾여버린 것이다.
특히 그간 부진했던 가전제품 판매가 11월에만 전년 동월 대비 22.2% 증가했는데도 전체 소매판매가 부진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1월은 중국 최대 쇼핑축제인 ‘솽스이(雙十一·11월 11일, 광군제)’가 있는 달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가 하반기 들어 더욱 힘을 주고 있는 이구환신(以舊換新·낡은 제품을 새것으로 교체) 정책 덕에 가전제품 소비는 늘었지만, 이는 보조금 덕일 뿐 전반적인 소비 심리는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 가전제품을 포함한 16개 소매 품목 중 9개가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였다. 화장품 소매판매액이 1년 전보다 26.4% 줄어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함께 발표된 다른 지표들도 대부분 상황이 좋지 않다. 투자 활력을 엿볼 수 있는 고정자산투자는 1~11월 46조5839억위안(약 9194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 증가했다. 1~8월부터 1~10월까지 3개월 연속 3.4%를 유지하다 결국 0.1%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1~12월(3.0%)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부동산 개발 투자액은 1~11월 9조3634억위안(약 1848조1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0.4% 감소했다. 2020년 2월(-16.3%)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도시 실업률 역시 전월 5.0%에서 5.1%로 확대됐다.
그나마 산업생산이 선방했다. 전년 동월 대비 5.4% 증가해 10월(5.3%)보다 소폭 확대됐고, 시장 전망치와도 일치했다. 하지만 안심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월간 산업생산은 1~2월 7.0%까지 올랐다가 3월 4.5%로 급락했지만, 4월 다시 6.6%로 올라서며 살아났다. 하지만 5월(5.6%) 이후 조금씩 둔화하더니 8월 4.5%까지 떨어졌다. 9월부터 다시 5%대를 되찾았지만, 연초와 같은 높은 수준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 미셸 람 소시에테제네랄 중화권 이코노미스트는 “산업 생산 안정화는 미국 관세 부과에 앞서 일부 주문이 선행 투입된 데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아 (이같은 성장세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라고 했다.
중국이 하반기 들어 쏟아낸 경기부양책이 좀처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9월 말 중국 인민은행이 은행 지급준비율 인하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고 밝힌 이후, 재정·통화 측면에서 각종 대책이 쏟아졌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내수 부진 타개에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그럼에도 성장하는 듯했던 소매판매는 꺾여버렸고, 내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투자 역시 살아나지 않고 있다. 소비 심리를 냉탕으로 만든 주범인 부동산 시장은 갈수록 악화일로다. 싱 자오펑 호주뉴질랜드은행(ANZ) 중국 수석전략가는 “전반적 그림은 여전히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전망을 가리키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라고 했다.
중국은 내년 경기 부양책의 고삐를 더욱 세게 쥔다는 방침이다. 중국을 옥죄려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요 성장 동력인 수출에 더 이상 기대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12일 중국 공산당은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재정적자율을 높이고 초장기 특별국채와 지방정부 특별채권의 발행을 늘리는 적극 재정정책 방향을 확정했다. 또 통화정책 기조를 ‘온건’에서 ‘적정 완화’로 14년 만에 전환해 시중에 더 많은 돈을 풀겠다고도 공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