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내년 초 인도태평양 지역을 대상으로 한 ‘경제적 틀’ 구성에 착수할 계획이다.
미국 경제와 통상을 책임지는 ‘투 톱’인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과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한국·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주요국을 방문해 이같은 구상을 밝혔다.
USTR은 19일(현지 시각)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회담 내용을 전하는 보도자료에서 “타이 대표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새로운 경제 틀을 발전시키려 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비전을 강조했다”며 “이 경제 틀은 이 지역에서 공통된 목적을 둘러싼 우리의 경제적 연계를 인도하고, 노동자와 중산층의 더 나은 삶을 만드는 것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했다.
같은 회담 내용을 전하는 한국 보도자료에는 관련 언급이 없었지만, 미국은 전체 세개 문단으로 구성된 짧은 자료에서 한 문단을 이 틀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화상으로 이뤄진 동아시아 정상회의 때 처음으로 ‘인도태평양 경제 틀(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백악관은 이후 보도자료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은 파트너국과 함께 우리의 공통된 목표를 정의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경제 틀의 발전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히며, 이 틀이 다루게 될 주요 분야로 ▲무역 활성화 ▲디지털 경제와 기술의 기준 마련 ▲공급망 탄력성 ▲탈(脫)탄소와 클린 에너지 ▲사회간접자본 ▲노동 기준 확립 등을 나열했다.
러몬도 장관은 이와 관련해 지난 17일과 18일 각각 “내년 초쯤 이 지역에 적합한 ‘경제의 틀’로 귀결되는 좀 더 공식적인 절차를 시작하고 싶다” “우린 통상적인 자유무역협정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해당 지역 내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재가입을 원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당장은 다양한 이유로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PTPP는 미국이 주도한 기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2017년 미국이 탈퇴하자 일본·호주·멕시코 등 나머지 11개 국가가 2018년 12월 30일 출범시킨 협의체다. 중국은 과거 TPP를 자국을 고립시키는 수단으로 보고 경계했으나, 지난 9월 16일 CPTPP 전격 가입 신청을 했다.
미국의 구상은 중국 견제를 위해 자유무역협정의 틀이 아닌,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믿을 수 있는 국가들 사이의 공급망인 ‘신뢰가치사슬(TVC)’을 잇기 위한 무역 규범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로이터도 러몬도 장관의 발언을 전하면서 중국이 지난 9월 CPTPP 가입을 신청한 점을 언급했다.
미국의 CPTPP 복귀를 주장해온 일본에서는 실망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18일 “(인도태평양 경제 틀 구상은) 현 시점에서 현실성이 부족하다”며 “TPP 복귀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정적인 형태로나마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경제적) 관여를 이어가겠다는 (미국의) 곤란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