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년 역사의 미국 제약 대기업 존슨앤드존슨(J&J)이 그룹 해체를 선언했다. 최근 자사 제약사업부인 얀센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가까스로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앞서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활석(탈크·talc) 베이비파우더 관련 소송과 배상금 지급 등 잇단 악재 속에 경영관리차 기업 쪼개기를 택한 것이다.
12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엘렉스 고르스키 J&J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2일 그룹을 두 개 사업부로 나누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J&J 135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J&J는 이르면 2023년 5월, 늦어도 11월 전에 제약·의료기기 사업부를 남기고 연매출 150억 달러 규모의 소비자건강 부문을 떼어내는 기업 분할 작업에 돌입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제약 시장 환경이 급격히 변화한 만큼 사업 부문별 대응 속도를 높이고 맞춤형 투자를 하기 위한 조치다. 고르스키 CEO는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하고 소비자의 요구를 더 충족하도록 소비자건강 사업을 별도 회사로 운영키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별도 법인의 기업공개(IPO) 여부와 경영진 인선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분할 결정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 화이자와 머크(MSD) 등 경쟁사들이 소비자 부문을 분사하고 제약 사업을 강화한 이후 나왔다. 독일 제약 대기업 머크는 2018년 미국 생활용품 제조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에 소비자건강 사업부를 매각했고, 미국 화이자는 이듬해 소비자건강 부문을 떼어냈다. 영국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도 지난해 그룹을 나눴다.
스킨케어와 영양제 등 헬스케어 부문은 트렌드에 민감하며 단기 수익을 창출하는 반면 제약 부문은 10년 이상 장기 개발과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웰스파고의 래리 비겔슨 분석가는 “제약사가 소비자 사업과 다른 부문을 한꺼번에 운영하며 시너지를 내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J&J의 기업 분할을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라며 “이런 이유로 기업들이 앞다퉈 그룹 분할에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J&J의 ‘해체 선언’은 1875년과 1892년에 각각 창업한 일본 대기업 도시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기업 쪼개기와 맞물려 더욱 주목을 받는다. 이들 기업 모두 각종 논란에 휩싸여 홍역을 치른 뒤 기업 평판을 회복하는 데 고심하고 있어서다. 대형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기업 분할이 효과적인 방편으로 여겨진다는 의미다.
앞서 J&J는 미국에서 수십 만 명의 사망자를 내며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던 오피오이드 사태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지난 7월 260억 달러(약 30조 원)의 배상금을 내놓기로 했다. 수십 년 간 3000여개 지방자치단체들이 오피오이드 사태로 피해를 입은 유가족 등을 대표해 J&J와 대형 유통업체인 맥케슨, 카디널, 아메리소스버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결과다. 지난달에는 활석 관련 법적 책임을 진 자회사 LTL매니지먼트 LLC에 대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신탁기금을 조성해 배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다.
약 300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도시바는 노트북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며 ‘일본보다 오래 갈 기업’으로 불렸지만 2015년 회계 스캔들에 연루돼 곤혹을 치렀다. 결국 지난 12일 발전 등을 다루는 ‘인프라서비스’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등 ‘디바이스’ 회사로 사업을 분할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말 불거진 회계 부정 의혹으로 미 당국으로부터 2억달러의 제재금을 부과받은 GE도 에너지와 의료장비, 항공산업으로 독립 분할을 결정했다.
WSJ은 J&J와 도시바, GE 등 조직이 비대해진 대기업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조직 개편을 결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만 하던 시대는 저물고, 사업구조를 단순화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케 하는 흐름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