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천연가스 수요의 35%를 공급하는 러시아 국영 기업 가즈프롬이 공급량을 동결하면서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또 폭등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 송유관 '노르트 스트림-2' 건설 작업 현장. /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유럽 요청에 따라 공급량을 늘리겠다고 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달 공급량을 동결하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최대 18% 상승한 것이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13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에너지 포럼에서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의도적으로 조절한다는 주장은 정치적 동기가 다분한 뒷담화에 불과하다”며 “유럽이 요청하면 언제든 공급량을 늘릴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나 폴란드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 시스템 중 어디에도 공급량 증가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겨울이 시작되면 가스 수요가 늘고, 또 예년보다 더 추운 겨울이 예상돼 가스 품귀현상이 나타날 전망임에도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추가 가스 공급을 서두르지 않고 있는 것.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공급량을 15% 늘릴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러시아는 유럽을 향하는 가스관의 공급량을 낮춘 것으로 파악됐다.

석유화학 정보제공기업 ICIS의 분석가 톰 마르젝 맨서는 서유럽을 향하는 세 개의 가스관 공급량이 이달 이미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하루 평균 302㎥에서 이달에는 261㎥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그는 “기존 모든 가스관에 공급량이 극대화된다면 하루 평균 가스 공급량은 360㎥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 따라 11월 인도분 천연가스 가격은 ㎿H(메가와트시)당 104유로(약 14만3204원)로 18% 올랐다. 영국에서도 11월 인도분이 100만BTU 당 2.71파운드로 15% 넘게 올랐다. 현재 천연가스 가격은 국제 유가와 비교하면 2배 가량 높은 수준이며, 1년 전과 비교하면 5배 넘게 오른 것이다. 이에 따라 에너지 집약적 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 국면에도 생산을 줄여야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 관리들이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의 개통을 전제로 가스 공급량 증가를 승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르트 스트림2′는 러시아 서부 나르바와 독일 북부 그라이프스발트를 연결하는 1225km 길이의 해저 가스관이다. 사업 주관사 ‘노르트 스트림2 AG’의 지분은 100% 러시아 국영가스 회사 ‘가스프롬’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2015년 이 건설 사업이 시작된 이후부터 러시아가 새 가스관을 ‘정치적 무기로’ 악용해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해왔다. 또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가 너무 높아져 안보가 위태로워진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러나 지난 7월 ‘러시아의 에너지 우위를 견제하기 위해 협력한다’며 가스관 건설에 동의했다. 러시아가 새 가스관을 정치적으로 사용하려 하면 추가 제재를 가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독일을 마냥 밀어붙이는 것은 전략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모스크바 BCS 글로벌마켓의 분석가 론 스미스는 “가즈프롬은 의심할 여지 없이 노르트 스트림2의 개통이 근래에 승인될 것이라 가정하고 그에 따라 스스로를 포지셔닝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르트 스트림2 운영자 측은 향후 판매를 준비하기 위해 약 177㎥의 가스를 주입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