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중국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국가보안법 시행 1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아시아 금융허브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보안법 시행으로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세계와의 갈등이 심화돼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오히려 홍콩 증시 상장을 원하는 중국 기업들이 늘면서 금융시장 규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뉴욕과 런던을 제치고 단일 증권거래소 기준으로 세계 1위 자리에 오른 '홍콩증권거래소' 건물. /조선DB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들어 홍콩 증시 상장을 통해 기업들이 조달한 자금 규모는 약 330억달러(약 38조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규모다.

블룸버그는 최근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해외 증시 상장을 규제하자, 많은 중국 기업들이 홍콩 증시 상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호출형 차량공유기업 디디추싱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을 한 뒤 중국 금융당국으로부터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역시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교육 관련 업체들도 중국 정부의 사교육 규제 대책이 발표되면서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마이클 허슨 중국·동북아시아 부문장은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 미국 자본시장이 중국 기업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며 “중국 본토 증시는 성숙하지 않은 데다, 선진국 증시에 비해 덜 개방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당분간 홍콩 증시가 미국 등 선진국 증시와 중국 본토 증시의 중간 단계로써 중국 기업들의 자금 조달처로써 많은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초 많은 외신과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지난해 홍콩 보안법 시행으로 외국인 투자자들과 자금이 이탈해 홍콩 금융시장이 쇠퇴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통과돼 7월부터 시행된 홍콩 보안법은 모든 홍콩 거주민들의 반중(反中) 활동을 조사하고 처벌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체제 유지를 이유로 언론을 통제하고 집회와 시위는 물론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까지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세계 국가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았다.

1일 홍콩에서 주권 반환 24주년을 기념해 국기 게양식이 열리는 가운데 홍콩 민주화 시위대가 인근에서 행진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룸버그는 홍콩 보안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금융시장에 직접적인 피해를 초래할 정도의 규제는 가하지 않은 점이 홍콩이 금융허브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투자은행 CLSA에서 임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중국 금융시장 전문가인 프레이저 호위는 “중국 정부가 홍콩 보안법을 통해 새롭게 도입한 규제가 아직 금융시장이 제시한 ‘레드라인’은 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레드라인에는 인터넷 제한이나 통화 조절, 거래 금지, 비즈니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법률 변경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더글러스 아너 홍콩대 법학과 교수는 “국제적인 표준이나 접근 방식에 어긋나는 규제가 도입되기 시작할 경우 홍콩 금융시장은 중대한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