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디지털 위안화 도입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거래 및 채굴을 금지했다고 인정했다.
관영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신문인 경제참고보는 24일자 1면에 ‘허위유사 화폐(암호화폐) 투기 혼란 정리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금융 당국은 암호화폐 불법 채굴 및 거래 활동 타격 강도를 높여 디지털 위안화 정식 도입에 더욱 양호한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설은 중국 당국이 과거에도 단속에 나섰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정부의 경고를 등한시했고, 일부 지방정부도 ‘빅데이터 센터’로 위장한 채굴장을 지원해왔다며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는 한편으로는 투자자에게 거대한 재산 손실을 초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금융 안정과 사회 질서에 악영향을 끼친다. 암호화폐를 불법 거래하거나 이에 편의를 제공하는 사람 및 기관은 반드시 처벌되어야 하고 각 지방은 비트코인 채굴장을 전면적으로 정리해 문을 닫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민간이 주도하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자국의 금융 주권을 침식할 수 있다고 보고 중앙집중적 통제가 가능한 디지털 위안화 도입을 준비 중이다. 이번 사설은 그러니까 내년 디지털 위안화 출시를 앞두고 민간 암호화폐의 씨를 말리겠다는 당국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사실 중국 당국의 이 같은 메시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중국은행업협회 등 3대 금융 유관 협회는 지난 18일 공고를 내고 암호화폐 거래 및 이를 지원하는 행위가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국무원은 그로부터 사흘 만인 21일 밤 류허(劉鶴) 부총리 주재로 금융안정발전위원회 회의를 열고 비트코인의 거래와 채굴을 모두 ‘타격’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정부 차원의 채굴 금지 방침이 나온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중국은 2017년 비트코인 등 민간 암호화폐 발행 및 거래를 공식적으로 금지했지만 개인의 음성적 거래까지 일일이 찾아내 처벌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4월까지만 해도 세계 비트코인 채굴 중 65.08%가 중국에서 이뤄졌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암호화폐 채굴 행위 단속 방침도 지방정부마다 달랐다. 그런데 이제는 중앙정부가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트코인 죽이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민간 암호화폐가 중국 당국의 눈밖에 나면서 시장은 출렁이고 있다. 앞서 중국 인터넷금융협회, 은행업협회, 지불청산협회가 공동으로 ‘암호화폐 거래 및 투기 리스크 방지에 관한 공고’를 발표하던 날에는 비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 가격이 30~40% 급락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도입 뿐 아니라 탄소배출 감소를 위해 이러한 일련의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중국 학술지가 발표한 한 논문이 이를 자세히 설명한다. 해당 논문은 비트코인 채굴 활동이 중국의 탄소배출 감소 노력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규제 정책이 없다면 중국 내 비트코인 채굴 활동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가 2024년 정점인 296테라와트시(TWh)를 기록할 것이다. 이는 1억3050만톤의 탄소배출과 맞먹는 양”이라고 했다.
실제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국의 탄소 배출량이 2030년까지 정점을 찍은 뒤 서서히 줄어 2060년에는 탄소 중립을 실현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중국은 이후 지난 3월 공개한 14차 5개년 경제계획(14·5계획)에서 2025년까지 비화석 에너지 사용 비중을 현재의 15% 수준에서 20%로 크게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다른 쪽에서는 비트코인이 돈세탁에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 당국을 자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지적했던 문제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21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투기의 수단 외 암호화폐가 사용되는 곳은 돈세탁이나 불법적인 분야 뿐”이라며 “효용을 찾을 수 없는 비트코인에 투자가 몰리는 것은 다단계 사기 수법과 같다”고 비판했다.
중국도 오랜 기간 이런 악용 사례들을 예의주시한 것으로 보인다. 허페이 공안당국은 이달 초 관련 범죄조직을 검거하고 이들이 비트코인을 통해 세탁한 금액이 100억위안(약 1조7000억원)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자금세탁 범죄 규모를 훨씬 상회하는 규모다.
이유야 어찌됐건 중국 당국이 암호화폐를 찍어 누르기로 마음을 굳히면서 채굴장들은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장, 특히 화력발전의 전력을 사용하는 채굴장은 미국과 캐나다로 사업장을 옮길 채비를 하고 있다”며 “중국 당국이 2017년 비트코인 거래 금지를 발표했을 당시 비슷한 움직임이 일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본격적”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