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가 ‘러시아판 폭스 뉴스’로 불리는 극우 방송 ‘차르그라드 TV’와 벌인 소송전에서 패하면서 러시아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몰렸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차르그라드 TV(왼쪽)와 유튜브 로고를 나란히 배치한 모습. /트위터 캡처

FT에 따르면 유튜브는 앞서 지난해 7월 ‘미국의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차르그라드 TV의 유튜브 채널을 차단했다. 차르그라드 TV는 지난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내에 존재하는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과 연계됐다는 이유로 미국과 EU 제재를 받고 있었다.

이에 차르그라드 TV가 유튜브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모스크바 법원에 제소했고, 러시아 모스크바 법원은 지난달 ‘차르그라드 TV 채널을 차단한 유튜브의 조치에 대해 해당 방송사 소유주에 대한 심각한 차별’이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FT는 전했다.

차르그라드 TV와의 소송 1심에서 패소한 유튜브는 지난 19일 항소했지만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지난해 개정된 헌법에 ‘관할권이 충돌할 경우 러시아법이 국제법에 우선한다’는 내용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패소가 확정될 경우 유튜브가 차르그라드 TV에 물어줘야 할 배상액은 총 1조2800억 달러(약 1440조원)까지 불어나게 된다. 유튜브의 모회사인 알파벳의 시가총액(약 1조55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엄청난 액수다. 이같은 액수의 벌금을 판결 받는다는 건 러시아 시장에서 더는 운영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유튜브는 “우리는 국제 규정을 준수하며 이에 대한 위반 사실을 발견할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이번 재판에 끝까지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차르그라드 TV의 소유주는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중 한 명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콘스탄틴 말로페프다. 그는 극우 성향인 미국 폭스 뉴스에서 일하던 프로듀서를 영입해 ‘러시아판 폭스 뉴스’를 지향하며 차르그라드 TV를 만들었다.

FT는 이번 판결이 이른바 ‘디지털 주권’ 강화에 나선 러시아 정부 조치의 연장선이라고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외국 기업이 러시아 국내법을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러시아가 ‘내부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막는 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트위터 등 미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반(反)정부 메시지가 러시아 내부로 전파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례로 푸틴 대통령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러시아 국영 TV 채널의 유튜브 구독자보다 훨씬 많은데, 이는 지난달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 반독점 당국은 유튜브의 정책이 ‘투명하거나 객관적이지 않고, 예측 가능하지도 않다’는 이유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유튜브를 대체할 ‘러시아판 유튜브' 개발 움직임도 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대기업인 가즈프롬은 지난해 말 유튜브를 본 딴 ‘러튜브(RuTube)’, 중국의 동영상 채널 ‘틱톡’과 유사한 ‘야몰로데츠(YaMolodets)’ 출시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들 앱을 러시아 스마트폰에 선탑재하는 법까지 제정한 상태다. 러시아 반체제 언론인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러시아가 인터넷 정책에서 (서방 경쟁 서비스를 배척하는) 중국을 따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