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002380)노루페인트(090350)를 잇는 국내 3위 페인트 기업 삼화페인트(000390)가 3세 승계에 시동을 건 모습이다. 삼화페인트는 1946년 고(故) 김복규, 고 윤희중 회장이 함께 창업했으나 지금은 김장연(66) 회장 1인 체제가 굳어졌다. 2019년에 입사한 김 회장의 맏딸 김현정(38) 전무는 작년에 승진했다. 김 전무가 최대주주로 있는 삼화페인트 관계사의 가치는 8년 만에 10배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김 전무의 승계 작업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실탄 마련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화페인트는 국내외에 총 16개 비상장 계열사를 두고 있다. 대부분 페인트 제조, 판매 기업이고 화학제품(삼화대림화학), 시스템 관리(에스엠투네트웍스), 물류(삼화로지텍) 등도 영위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 60년 동업 뒤로 하고 김장연 1인 체제로

오너 2세인 김장연 회장은 1994년 4월 처음 대표이사직에 올랐고 2018년 2월부터는 회장직을 맡고 있다. 현재 김 회장은 그룹 경영을 전반적으로 총괄하고, 실무는 류기붕·배맹달 각자대표가 맡고 있다.

회사 지분을 보면 최대주주는 지분 27.3%(742만7422주)를 보유한 김 회장이다. 일본 츄고쿠마린페인트(4.88%)와 자사주(13.28%)를 포함하면 45%가 넘는 우호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이 밖에 5% 이상 주주로는 윤석재씨(6.9%)와 윤석천씨(5.52%)가 있다. 이들은 삼화페인트 공동 창업주 2세로, 고 윤희중 회장의 아들이다.

공동 창업으로 세워진 삼화페인트는 과거 김씨 일가와 윤씨 일가가 60년 넘게 동업 관계를 이어 왔다. 두 창업주가 작고한 뒤엔 김장연·윤석영 당시 대표가 회사를 물려받아 함께 이끌었다. 그러다 2008년 윤 대표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이후 김 회장이 회사를 단독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양가는 한때 경영권 분쟁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김씨 일가가 경영권을 갖게 됐다.

현재 윤씨 일가의 지분은 석재·석천씨의 지분을 합쳐도 김 회장 지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두 사람은 회사 경영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삼화페인트 제공

◇ 김 회장 맏딸, 입사 3년 만에 전무 승진

이런 가운데 김장연 회장의 장녀 김현정 전무가 지난해 말 승진하면서 3세 승계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 전무가 향후 경영권을 물려받으면 페인트 업계에선 조광페인트(004910)에 이어 두 번째 여성 대표가 탄생하게 된다.

김 전무는 변호사 겸 회계사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공인회계사와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9년 9월 삼화페인트에 상무로 입사했다. 삼화페인트 관계자는 “김 전무는 현재 경영지원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회계 업무를 비롯해 원료, 상품 등 구매 일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입사 전엔 삼화페인트 출자 법인인 이노에프앤씨에서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관리본부장으로 근무했다. 이노에프앤씨는 2011년에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됐다. 이노에프앤씨는 점착제(포스트잇처럼 탈·부착이 가능한 제품)와 접착제(본드처럼 강한 접착력을 갖는 제품) 등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삼화페인트와도 거래한다.

삼화페인트는 회사 설립 이듬해인 2012년 단순 투자 목적으로 이노에프앤씨에 2500만원을 출자했다. 지분율은 15%였다. 이후 2020년 9월, 삼화페인트는 김 전무와 김정석씨에게 이노에프앤씨 지분을 3%씩 양도했다. 김정석씨는 김 전무의 남동생이다. 삼화페인트는 “투자자금을 일부 회수하기 위해 지분을 양도했다”고 공시했다.

삼화페인트의 지분 양도로 김 전무의 이노에프앤씨 지분은 2019년 28%에서 2020년 31%로 올랐다. 나머지 69% 가운데 9%는 삼화페인트, 60%는 정석씨 등 3명이 보유 중이다. 정석씨의 정확한 지분율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노에프앤씨 제공

◇ ‘맏딸 회사’ 주식 가치 10배 ↑… 승계 준비 시작하나

김 전무가 삼화페인트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은 2020년을 기점으로 이노에프앤씨는 실적이 개선됐다. 이노에프앤씨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엔 매출액 142억원, 영업손실 3억원을 기록했으나 이듬해엔 매출액이 220억원으로 뛰었고 영업이익도 12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주식 가치는 8년 만에 10배가 됐다. 2012년 삼화페인트 첫 출자 당시 1주당 가격은 3만3000원 수준이었지만, 2020년 삼화페인트가 김 전무에게 지분을 양도할 당시 1주당 가격은 34만원이었다. 2020년 기준 이노에프앤씨 주식 가치는 총 17억원 수준이다.

2020년 이후 감사보고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실적이 지속적으로 개선됐다면 주식 가치는 더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노에프앤씨가 김 전무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줄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회장은 앞서 37세의 이른 나이에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고, 차남 정석씨는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아 이변이 없다면 김 전무가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김 전무의 삼화페인트 지분은 0.04%(1만주)에 불과해 향후 김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넘겨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무는 아직 이사회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삼화페인트 관계자는 “김 전무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각자 대표 체제로 전문 경영인을 두고 있는 만큼 현재로선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