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외국인 멤버를 국내 아이돌그룹에 영입하던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이제는 현지에서 직접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교육, 데뷔, 활동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K팝 육성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현지 아티스트에 K팝의 성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트레이닝과 프로듀싱 등을 더한 ‘한류 현지화’다. 이 방식이 정착되면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체는 매출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다.

21일 엔터테인먼트업계에 따르면 해외 자본과 손잡고 이 같은 시스템을 적용한 해외 아이돌그룹을 만드는 전략은 ‘한류 3단계’로 통한다. 칼군무·완성형 아이돌로 대표되는 K팝 육성 시스템은 연습생을 발굴해 노래는 물론 콘셉트, 생활까지 철저하게 트레이닝하고 이들의 활동 전반을 기획·관리한다. 한류 1단계는 국내 아티스트가 해외에 진출하는 것을, 2단계는 외국인 멤버를 국내 그룹에 영입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지난달 한일 양국에서 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일본 최대 음반사 소니뮤직과 손잡고 '니지 프로젝트'(Nizi Project) 시즌 2를 통해 새 보이그룹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대표적으로 올 상반기 일본 음악 시장에서 가장 큰 화제였던 걸그룹 니쥬(NiziU)가 있다. 지난해 데뷔한 니쥬는 걸 그룹으로는 사상 최초로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1억 스트리밍 기록을 두 번 달성했다. 니쥬 멤버 전원이 일본인이고 노래도 일본어로 부른다. 그런데 이 니쥬를 만든 건 일본이 아닌 한국 기획사인 JYP엔터테인먼트(JYP Ent.(035900))다.

JYP엔터테인먼트는 니쥬를 만들기 위해 일본 최대 음반사 소니뮤직과 손을 잡고 일본 현지에서 오디션을 열었다.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발탁된 멤버들은 이후 한국에 있는 JYP엔터 본사에서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았다. 니쥬가 대성공하면서 일본에서 박진영 JYP엔터 총괄 프로듀서는 ‘이상적인 상사’로 꼽히는 등 찬사를 받고 있다. 무라마츠 슌스케 소니뮤직 대표는 최근 니쥬에 이어 ‘니지 프로젝트’ 시즌 2로 보이그룹을 뽑는 것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박진영에게 트레이닝을 받는 모습을 보고 참가자 및 부모님이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수 보아의 일본 진출 등 일찌감치 해외 시장 진출에 공을 들였던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041510))도 최근 보이 그룹 웨이션브이(WayV)를 선보였다. 웨이션브이는 SM엔터가 프로듀싱을, 현지 합작레이블인 ‘레이블 브이’가 매니지먼트를 각각 맡아 중국과 홍콩, 대만 멤버를 주축으로 만든 현지화 그룹이다. JYP엔터의 니쥬처럼 K팝 육성 시스템 자체를 수출해 해외 멤버들만으로 현지에서 활동하게 하는 방식이다.

웨이션브이는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으로 한국 아이돌들의 중국 활동이 제한받는 상황에서도 현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데뷔 앨범 ‘테이크 오프’로 아이튠즈 종합 앨범 차트 기준으로 세계 30개 지역에서 1위에 올랐는데, 이는 중국 남자 아이돌 그룹 중 역대 최고 기록이다. SM엔터 역시 웨이션브이의 성공에 힘입어 미국 제작사 MGM과 함께 아이돌 NCT의 미국 유닛인 ‘NCT 할리우드’를 발굴하는 글로벌 오디션을 열기로 했다.

JYP엔터테인먼트가 일본에서 론칭한 걸그룹 '니쥬'(위쪽)와 SM엔터테인먼트가 중국·홍콩·대만 멤버로 선보인 보이그룹 '웨이션브이'. /JYP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352820)도 미국에서 K팝 보이그룹을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 최대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과 손잡고 미국에서 오디션을 개최하는 것이다. 하이브는 BTS를 글로벌 아티스트로 만든 경험을 기반으로 미국 시장에 K팝 비즈니스 모델을 본격적으로 이식해 제작, 신인 양성, 마케팅까지 직접 진두지휘할 예정이다.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는 그동안 아이돌 그룹의 해외 진출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외국인 멤버를 영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K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에서 인지도를 높인 후 팀을 이탈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아이돌 그룹에서 한 멤버의 탈퇴는 팬심의 이탈로 이어지기에 기업 매출에 타격을 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K팝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 기업이 현지에서 육성한 아이돌이 주목받고 있다”며 “외국인이 외국어로 노래하지만, K팝의 DNA를 접목했다는 점에서 한류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