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이 내수시장을 벗어나 세계 각국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텃밭으로 꼽혔던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도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승전보가 연이어 들려오면서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직 기술력 측면에서는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우위를 보이고 있는만큼, 기술력 격차를 유지하고 완성차 업체들의 주요 전기차 모델 물량 수주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로이터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28일(현지시각) 프랑스 완성차 업체 르노는 중국 친환경 에너지 기업 엔비전 그룹의 배터리 업체 AESC, 프랑스 배터리 업체 베르코와 배터리셀 공급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AESC는 르노가 전기차 허브를 조성하고 있는 프랑스 북부 두아이(Douai)에 20억유로(약 2조6800억원)를 들여 배터리 공장을 짓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43GWh(2030년 기준) 배터리 중 절반 이상을 르노에 공급할 예정이다.

루카 드 메오(오른쪽) 르노 최고경영자와 도미니크 세나르(왼쪽) 르노 회장이 28일(현지시각) AESC 미래 공장 부지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EPA 연합뉴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르노의 차기 전기차 프로젝트 협업 대상으로 LG에너지솔루션도 거론됐었지만, 결국 제외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10년 르노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됐고, 이듬해부터 배터리를 납품해왔다. 르노의 간판 전기차 모델인 ‘조에’에도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들어간다. AESC는 르노와 특수관계다. AESC 지분 20%를 보유한 일본 완성차 업체 닛산이 르노와 기업연합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AESC를 비롯한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유럽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중국 CATL이 독일 튀링겐 주에 총 18억유로(약 2조4100억원)를 투자해 설립한 공장은 올해 연말부터 본격 가동한다. 2025년까지 연간 100GWh 생산 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CATL은 메르세데스-벤츠의 모회사인 독일 다임러 그룹과 지난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2019년엔 BMW와도 73억유로(약 9조7800억원) 규모의 배터리 계약을 체결했다. 이외 테슬라와 폴크스바겐도 유럽 생산 전기차에 CATL 배터리를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주로 활동하던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긴장하고 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세계 전기차 시장만 놓고보면 중국 시장이 워낙 커서 중국 배터리 업체 점유율을 한국이 따라가기 어렵다”며 “다만 유럽 시장의 경우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독식하던 시장이었는데, 중국이 내수 시장에서 벗어나 점차 유럽 등으로 진출하고 있어 위기감이 느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중국 외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의 배터리 업체 비야디(BYD)와 CATL의 세계 시장 점유율(중국 제외)은 전년 동기대비 각각 489%, 301% 성장했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은 146%, 삼성SDI(006400)는 96%, SK이노베이션(096770)은 143.5% 증가했다.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미중 무역 갈등과 세금 감면 혜택 문제 등으로 미국에 공장이 없는 중국 기업의 전기차 배터리를 채택하지 않는다. 결국 중국 업체의 이런 성장세는 상당수 유럽 시장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2030년까지 큰 폭으로 생산능력을 늘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약진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2030년까지 990GWh까지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그 뒤를 잇는 LG에너지솔루션(815GWh)보다 175GWh 많다. 이외에 SK이노베이션이 344GWh, 비야디가 250GWh, 삼성SDI가 254GWh 등으로 비슷한 수준의 생산능력 확충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만큼 배터리 경쟁은 더욱 심화되겠지만, 아직 한국이 중국 대비 기술력 우위를 보이고 있어 경쟁력 유지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기술력은 앞서 있지만 가격은 중국이 낮아 완성차 업체들의 성향에 따라 물량 수주가 갈리고 있다”며 “결국 전기차의 품질이 중요한만큼 기술력 격차를 유지해 각 완성차 업체들의 주요 전기차 모델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