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는 지난 몇 년간 매각설이 끊이지 않았다. 람보르기니를 보유한 독일 폭스바겐그룹이 폭스바겐·아우디·포르셰 등 핵심 브랜드에 집중하는 가운데 미래차에 투자하기 위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부 브랜드를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영국의 슈퍼카 제조사 애스턴 마틴 역시 몇 차례 매각설이 나왔다. 지난해에는 중국 지리자동차가 애스턴 마틴을 인수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이후 주요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보복 소비'의 영향으로 슈퍼카 업체의 실적이 개선됐고,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슈퍼카의 전동화 가능성을 확인한 이들 업체가 매각설을 잠재우고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그룹 내 람보르기니 매각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고, 애스턴 마틴은 메르세데스-벤츠 제조사인 다임러그룹과 함께 애스턴 마틴을 최고급 슈퍼카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람보르기니를 소유한 폭스바겐그룹의 아우디는 최근 스위스 퀀텀그룹으로부터 람보르기니 매각 제안을 받았다. 영국 투자회사 센트리커스에셋매니지먼트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퀀텀그룹이 제시한 인수 금액은 75억유로(약 10조원) 규모다. 람보르기니의 브랜드 소유권부터 연구·생산 기지, 모터스포츠 사업 일체에 대해 인수 의사를 밝힌 이들은 매각 제안 서류에 앞으로 최대 5년간 람보르기니 직원의 고용을 보장하고 850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다. 이에 대해 폭스바겐그룹 측은 “람보르기니는 팔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업계에서는 람보르기니의 실적 개선세가 이어지고 최근 구체적인 전동화 전환 계획을 발표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람보르기니는 지난해 코로나 사태 여파로 70일간 생산을 중단하고도 전 세계에 7430대를 판매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매출을 달성했다. 특히 중국에서 판매가 크게 늘었다. 스테판 윙켈만 람보르기니 회장은 “지난 1~2월 인도량이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대수를 넘어 올해도 판매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익 증가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동화 전환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람보르기니의 미래 가치를 높이고 있다. 람보르기니는 2023년 첫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고, 2030년 말까지 전체 라인업을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디레지오네 코르 타우리(Direzione Cor Tauri·황소자리의 심장을 향해)’ 계획을 발표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슈퍼카 업체들에 전기차 전환은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조용한 전기모터의 특성상 슈퍼카의 매력인 거친 엔진 떨림과 배기음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고성능 전기 슈퍼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슈퍼카 업체의 전동화 전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포르셰는 일찌감치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 슈퍼카 ‘타이칸’을 출시했고, 페라리 역시 전동화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미래차 시장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전기차 분야에서 슈퍼카의 가능성을 확인한 폭스바겐그룹이 람보르기니를 매각하는 대신 상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캐나다 억만장자 로렌스 스트롤 회장이 경영권을 가진 애스턴 마틴 역시 만성 적자가 이어진 탓에 매각설이 끊이지 않았지만 올해 1분기에 크게 개선된 실적을 발표한 이후 그동안 제기됐던 매각 가능성이 잦아드는 분위기다. 애스턴 마틴은 올해 1분기에 내놓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DBX가 판매 호조를 보이면서 지난해 1분기 1억1000만파운드였던 손실 규모가 올해 4200만파운드로 축소됐다.
스트롤 회장은 1분기 실적 발표 직후 다임러그룹이 애스턴 마틴의 지분을 확대해 공동 투자자로서 협업해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면서 “우리는 애스턴 마틴을 세계 최고급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성공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해 확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애스턴 마틴은 전동화 전환 계획도 발표했다. 애스턴 마틴은 2023년 말까지 10대 이상의 신차를 선보일 계획인데, 여기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가 포함된다. 첫 번째 순수 전기차는 2025년에 출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