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2024년 실적이 부진할 전망이다. 방탄소년단(BTS)·블랙핑크 완전체 같은 ‘메가 지식재산권(IP)’이 부재하면서 앨범 판매가 주춤했기 때문이다. 다만, 엔터사의 실적을 책임지는 이런 대형 아티스트가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무대 위로 오를 전망인 만큼 실적이 바닥을 찍고 좋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2023년 매출 2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했던 하이브는 2024년 2조1961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전년보다 0.8% 증가한 수치다. 다만 영업이익은 2956억원에서 2037억원으로 31%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에스엠(041510)엔터테인먼트 상황도 비슷하다. 2024년 에스엠의 매출 전망치는 9760억원으로 전년(9611억원)보다 1.6%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영업이익은 756억원으로 33.4% 감소할 것으로 집계됐다. 실적 타격이 그나마 덜하다는 JYP Ent.(035900) 역시 매출은 5648억원으로 전년과 비슷할 것으로 보이고, 영업이익은 1279억원으로 24.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블랙핑크를 대체할 아티스트를 내놓지 못한 와이지엔터테인먼트(122870)는 엔터사 중에서도 가장 부진한 성적표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5692억원 수준이었던 매출은 3683억원으로 다시 2022년 수준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이고, 226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며 적자전환 할 전망이다.
엔터사들의 실적이 부진한 이유는 앨범 판매가 시원찮았던 점이 꼽힌다. 중국 당국이 거액 모금으로 연예인을 지지하는 행위를 제지하자, K팝 팬덤 사이에서 음반 공동구매 움직임이 축소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뉴진스를 둘러싼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하이브 경영진의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는 점도 음반 판매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음반 밀어내기’ 등의 과도한 마케팅 경쟁이 문제로 거론된 만큼 이를 자제했다는 것이다.
한국음반콘텐츠협회의 써클차트에 따르면 지난해 K팝 실물 음반 판매량은 9890만장으로 전년(1억2020만장) 대비 17.7% 감소했다. 특히 세븐틴의 음반 판매량은 1600만장에서 896만장으로 반토막 났고, 300만장 이상 판매한 팀도 11곳에서 7곳으로 줄었다. 500만장 이상 팀은 아예 나오지 않았다.
각 엔터사들이 차세대 K팝 스타 발굴을 위해 신인 그룹 육성에 투자를 늘리면서 비용이 증가한 점도 수익성 악화 배경이다. YG엔터테인먼트는 다국적 걸그룹 ‘베이비몬스터’, 에스엠은 영국 보이그룹 ‘디어앨리스’를 각각 데뷔시키는 등 초기 투자 비용이 발생했다. 하이브의 경우 K팝 시스템으로 제작해, 미국에서 데뷔·활동하는 현지화 그룹 ‘캣츠아이’ 투자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엔터사들의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반기부터 BTS와 블랙핑크 완전체 활동이 예고돼 있어서다. 아일릿(하이브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 투어스(TWS·하이브 레이블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NCT위시(에스엠 소속) 등 2023~2024년에 데뷔한 신인들이 수익 단계에 접어든다는 점도 기대 요인이다. 증권가에서는 2025년 4대 엔터사의 합산 매출이 전년 대비 16.4% 증가한 4조8000억원, 영업이익은 60.6% 증가한 6613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엔터 4사 중 유일하게 적자를 내며 체면을 구길 것으로 보이는 YG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음악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현재 소속된 24명의 배우들은 계약 만료 시점에 맞춰 순차적으로 YG를 떠나게 된다.
지난해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플렉스 지분 60%를 매각하며 경영권을 넘긴 데 이어 댄스 매니지먼트 레이블 YGX도 청산했다. YG 측은 이런 구조조정을 통해 2025년을 사업 재편의 원년으로 삼고 음악 산업에서의 리더십을 확고히 해 실적 개선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K팝이 ‘제2의 BTS’ 같은 혁신 상품(아티스트)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어야 장기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진단한다.
이장우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새로운 개념의 신인이 지속적으로 나와야 K팝이 발전할 수 있지만, 투자 비용은 점점 올라가고 이를 회수할 방법도 표준계약서 개정으로 7년으로 막히면서 어려워졌다”면서 “BTS는 중소 규모 제작사였던 빅히트엔터테인먼트(하이브 전신)에서 나왔다. 대기업뿐만이 아니라 중소사도 얼마든지 이런 아티스트를 내놓을 수 있는 규제 개혁과 인센티브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