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는 세 편의 천만 작품과 한국 영화계 '최연소 1억 배우'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가졌지만, 아직 감독으로서는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세 번째 연출작 '로비'를 통해 감독 하정우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앞으로 방향성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면서 배우 커리어 못지않게 기대감을 높였다.
'로비'(감독 하정우, 제작 워크하우스 컴퍼니·필름모멘텀, 제공 미시간벤처캐피탈(주)·위지윅스튜디오(주), 배급 ㈜쇼박스)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 분)이 4조 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3년 '롤러코스터'로 첫 연출작을 선보이며 감독으로 데뷔한 하정우가 '허삼관'(2015)을 거쳐 10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연출 작품이다.
하정우는 '로비'를 작업하면서 감독을 비롯해 각본, 주연까지 1인 3역을 맡았다. 평소 입담과 재치가 뛰어난 그의 장점을 그대로 반영해 각본에 녹였고, 인물들의 대사 티키타카를 최대한 살렸다. 여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 독특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기발한 재미를 선사한다. 예를 들면 어머니 장례식장에 나타난 친구의 외국인 아내와 스님 출신 도청 요원 등이다.
'로비'는 감독 하정우의 첫 작품 '롤러코스터'와 닮아 있다. 스토리 전개와 주요 배우들은 다르지만,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톱스타 마준규(정경호 분)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해프닝을 그린 블랙 코미디로, 재기 발랄한 설정과 '말맛'이 돋보였다.
12년 전, '롤러코스터'는 밀폐된 특정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소동극을 연상케 했고,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줬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면서, 취향을 저격 당한 마니아층은 열광했지만, 흥행 면에선 웃지 못했다. 반면, 신작 '로비'는 '롤러코스터'의 말맛과 기발함은 살리되, 좀 더 대중적인 상업영화의 문법을 따랐다. 아무 의미 없는 단순한 말장난이 넘치는 B급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또한 하정우뿐만 아니라 라이벌 회사 대표 박병은, 정치권 실세 최실장 김의성, 프로 골퍼 진프로 강해림, 마성의 국민배우 마태수 최시원, 골프장 사모님 차주영, 창욱을 보필하는 김이사 곽선영, 부패한 조장관 강말금, 골프장 대표 박해수 등 연기 구멍 없는 배우들이 펼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촌스럽지 않게, 무게 잡지 않고도 후반부에는 감독 하정우가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은지, 그 부분도 잘 드러난다.
4월 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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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포스터 및 스틸컷
[OSEN=하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