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커스 버킹엄(Marcus Buckingham)은 1999년 저서 ‘사람의 열정을 이끌어내는 유능한 관리자(원제 First, Break All the Rules)’에서 직장인들이 조직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로 낮은 연봉이나 비전 없는 조직이 아니라, 상사의 무관심을 꼽았다. 하지만 직원의 근로 의욕을 꺾는 것이 비단 상사만은 아니다. ‘유능한 동료가 최고의 (사내) 복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떤 동료를 만나는가에 따라 직장인의 만족도는 크게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조직의 능률을 떨어뜨리고 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조직의 적(敵) ‘오피스 빌런’을 집중 분석했다. [편집자 주]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 심리학 학·석사, 미국 텍사스오스틴대심리학 박사, 현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전 중앙심리부검센터 센터장. 김경일

“같은 잘못을 해도 오피스 빌런(office villain·직장의 골칫덩이)보다 온화한 직원들이 더 강하게 처벌받는 일이 많다. 조직의 상층부에서 ‘이래야 가장 뒤탈이 없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조직 전체의 경쟁력과 생존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10월 21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유능한 직원일수록 먼저 회사를 떠나는 것이 문제”라며 “온화한 직원들이 직장 내 주도권을 갖도록 공정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tvN ‘어쩌다 어른’, MBC ‘선을 넘는 녀석들’, CBS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한 스타강사다. 최근 법무법인 율촌은 김 교수를 ‘오피스 빌런, 알고 대응하기’ 웨비나에 초청했다. 괴롭힘 가해자와 피해자, 권리 남용 직원의 심리를 파악해 효율적으로 문제에 대응하도록 기업 경영·인사 담당자들을 도울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피스 빌런을 줄여나가기 위한 방안으로 김 교수가 강조한 것은 ‘조직 문화’였다. ‘착한 사람이 손해 보는’ 조직 문화는 후천적 악인을 양성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괴롭힘이 폭력이나 살인미수 수준의 육체적 상해와 비슷한 고통을 유발하는 만큼, 피해자를 배려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 일문일답.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괴롭힘이 만연했다는 것이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법령이 시행되고 난 뒤에야 자신이 당한 피해가 문제 되는 것임을 깨달은 경우가 많다. 법 시행 후 일정 기간 괴롭힘 신고가 증가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학교에 배포된 뒤 ADHD 학생의 수가 급증한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분명한 건 밀접한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많은 괴롭힘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과도기에 있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타살의 가장 큰 주범은 낯선 사람이 아닌 지인이라는 점과 맥을 같이 한다.”

괴롭힘 가해자의 대표적인 심리 유형은.

“일단 타고난 가해자와 후천적으로 형성된 가해자로 나눌 수 있다. 타고난 가해자란 공감 능력 자체가 결여돼 있거나 자신이 혐오하는 상대방이 고통받을 때 쾌감을 느끼는 유형의 사람들을 말한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적 유형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조직의 문화·분위기가 약한 사람을 더 괴롭히거나, 착한 사람을 더 많이 처벌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형성되면 타고난 악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해자는 더욱 많아진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져도 가해자들이 양산될 위험이 커진다.”

피해자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은.

“흔히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는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피해자의 뇌는 칼에 찔리거나 둔기에 맞아 육체적 상해가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의 고통을 느낀다. 살인미수에 가까운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실제 뇌의 활성화 지역도 거의 유사하다. 그러니 ‘잘 참아보라’는 식이나 ‘원만하게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라’는 식의 접근은 문제를 오히려 더 키울 수 있다. 동료들은 교통사고 환자처럼 신체적으로도 피해자를 배려해야 한다. 기업은 그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스레 조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보통 괴롭힘 피해자를 정신력이 약하거나 의지력이 부족한 사람, 사회생활 부적응자로 낙인찍거나 소외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문제를 가장 크게 악화시키는 행동이다.”

괴롭힘 신고자가 꼭 피해자가 아닌 경우도 있다. 신고의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대부분의 심리학 연구에서 진술의 생생함, 정확성은 신빙성과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오히려 거짓 진술이 더 앞뒤 말이 잘 맞아떨어지고 논리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정서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받은 상황의 기억은 주변의 정황 단서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진술에 두서가 없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목격자 진술이 논리적이냐를 따지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당시 느꼈던 감정의 일관성이 더 믿을 만한 근거다.”

율촌의 ‘오피스 빌런’ 웨비나에서 ‘권리 남용 직원’이라는 개념이 소개됐다. 이들의 심리는.

“‘망치를 가진 자는 모든 것들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어떤 도구에 집착하면 모든 문제를 그 도구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권리 남용 직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관련된 고발 제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심리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유연한 사고 능력이 부족하다. 거짓말쟁이나 사기꾼 같은 기질을 갖췄다기보단 전반적·다면적 사고가 어려운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사회와 기업은 ‘용기를 낸 양심 있는 내부고발자’와 ‘문제 해결을 위해 내부고발이라는 도구 하나밖에 사용할 줄 모르는 자’를 구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견을 공개된 곳에서 자유롭게, 안전하게 얘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오피스 빌런이 심리적 요인으로 기업에 미치는 피해는.

“문제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 조직에 더 오래 남아 있으려고 한다. 이로 인해 유능한 직원이 먼저 기업을 떠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렇게 되면 조직 전체의 경쟁력과 생존력이 급전직하한다. 기업이 오피스 빌런 문제에 조용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냉정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 이유다.”

기업이 오피스 빌런의 발생을 예방하는 방법은.

“온화한 직원들이 더 우대받아야 한다. 오피스 빌런이 아닌 친절한 직원들이 주도권을 가지게 해야 한다. 의외로 같은 잘못을 했어도 착한 직원이 더 강하게 처벌받는 일이 자주 관측된다. 조직의 상층부나 리더가 착한 직원들이 가장 만만하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오피스 빌런은 자신이 주도적인 직원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직장인들이 오피스 빌런에 대응하려면.

“사실 과거보다 민주적으로 진화한 현대의 직장에서는 오히려 오피스 빌런에게 대응하기가 어렵다. 빌런들 역시 조직 내에서 존중받아야 하는 다양성의 일부로 배려받는 경우가 많아져서 그렇다. 개인적 차원의 대응이 절대 쉽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평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또 오피스 빌런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대부분 육체적 질환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신체적 건강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오피스 빌런을 상대할 때 유념할 점은.

“사람을 악인과 선인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사람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과관계를 봐야 한다. 즉, 가해와 피해 등 행위와 결과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황, 시점, 여건과 같은 다양한 주변 요인들을 같이 봐야만 한다.

최근 오피스 빌런이 나타나는 양상을 우리 사회와 조직이 퇴보하는 것으로 봐서도 안 된다.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는 일정 기간 문제가 더 악화된 듯한 착시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시대를 통탄하거나 특정한 세대나 집단, 혹은 가치관에 그 책임을 돌리는 것처럼 우매한 행동이 없다. 사회가 더 진보된 방향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통과의례라는 생각이 더 지혜롭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코노미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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