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000080)가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야심 차게 선보였던 맥주 ‘켈리’ 출시 이후, 맥주 사업 부문에서 힘을 못 쓰고 있다. 켈리 출시 이후 2년 사이 맥주 매출이 급감하고, 공장 가동률까지 하락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회사 맥주 사업 전반에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증권가 컨센서스에 따르면 하이트진로의 올해 1분기 맥주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줄어든 1797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3% 감소한 56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하이트 진로 맥주 테라와 켈리가 진열되어 있다. /뉴스1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창사 100주년을 기점으로 켈리와 기존 맥주 테라의 ‘쌍끌이 효과’를 바탕으로 한 맥주 사업 부문 부활을 기대했다. 그러나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2024년 전체를 놓고 봐도 하이트진로 별도 기준 맥주 매출은 2023년 7288억원에서 지난해 7254억원으로 34억원(-0.5%) 줄었다. 종속기업 재무 정보까지 합친 연결 기준 매출은 0.04% 오르는 데 그쳤다. 2023년 11월 맥주 가격 7% 인상 효과가 2024년 매출에 본격적으로 반영된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판매량 감소 폭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소주 매출은 1조2299억원에서 1조2998억원으로 699억원(5.7%) 증가해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 가동률·생산량 동반 하락... ‘켈리 효과’ 없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하이트진로 맥주 공장 생산량은 2023년 켈리 출시 직후 최고점을 기록했다. 2022년 55만8000킬로리터였던 맥주 생산량은 2023년 57만9000킬로리터로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51만4000킬로리터로 급감했다.

켈리 이전 맥주였던 테라가 본격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한 2021년(52만5000킬로리터)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래픽=손민균

하이트진로는 강원공장과 전주공장에서 테라와 켈리를 생산한다. 강원공장은 2023년 29만킬로리터에서 2024년 25만3000킬로리터로, 전주공장은 28만9000킬로리터에서 26만2000킬로리터로 생산량이 줄었다.

생산량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공장 가동률도 하락했다. 지난해 강원공장 가동률은 61%, 전주공장은 67%에 그쳤다. 평균 가동률은 64% 수준이다. 2022년 강원공장 65%, 전주공장 74%에 비해 각각 4%포인트(p), 7%p 떨어졌다.

맥주 업계 전문가는 “보통 공장가동률은 평균 조업량 기준으로 70~75%를 완전 가동이라고 본다. 하이트진로는 두 공장 모두 여기에 한참 못 미친다”며 “켈리 출시 시기였던 2023년에 일시적으로 높은 가동률을 기록한 후 계속 생산라인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하이트진로가 우려했던 대로 켈리와 테라 간 ‘캐니벌라이제이션(점유율을 두 제품이 서로 깎아 먹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방증이다. 켈리 발매 직후 공장 가동률을 높여 시장에 대거 푼 제품들이 반짝인기를 끌어 일시적으로 매출이 증가했지만, 그 효과는 2년도 이어지지 못했다.

2019년 3월 발매한 테라는 6년 동안 누적 판매량 50억병을 넘어섰다. 연간 판매량 8억3000만병 수준이다. 반면 켈리는 2023년 3월 발매 후 2년간 6억병 판매에 그쳤다.

◇ 한 배 타고 가라앉은 켈리·테라... ‘효자’ 참이슬 부담 가중

전문가들은 올해 1분기 이후에도 하이트진로 맥주 매출에 별다른 개선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IBK투자증권 컨센서스에 따르면 하이트진로 올해 연결 기준 맥주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1.6% 감소한 8100억원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하이트진로 맥주 부문 매출액은 연결 기준으로 볼 때 마케팅 비용 변화에 따라 2023년 적자를 기록했다가, 2024년 다시 일시 흑자로 전환하며 불안정한 수익 구조를 보였다.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흑자를 낼 수 있지만, 그만큼 시장 점유율과 인지도가 하락하는 진퇴양난에 빠져있다는 의미다.

반면 이 기간 하이트진로는 소주 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뒀다. ‘참이슬 오리지널’, ‘참이슬 프레시’ 등 기존 제품은 여전히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시장 1위 자리를 굳혔다. 하이트진로 국내 소주 시장 점유율은 60%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이트진로에서 맥주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32.4%에서 지난해 31.2%로 1.2%p 하락했다. 반면 소주 매출 비중은 같은 기간 54.7%에서 55.8%로 1.1%p 올랐다.

소주로 벌어온 돈이 맥주에서 새는 현상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소주 사업부와 맥주 사업부 간에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내부 불만도 커지고 있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는 2011년 대표 부임 후 15년 임기 내내 ‘오비맥주에 뺏긴 맥주 1위 자리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1위였던 소주 영업망도 2위로 떨어진 맥주 영업망과 합쳤다. 그는 2023년 켈리 발표회 자리에서도 “국내 맥주 시장 1위 탈환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현실은 그의 포부와 달리 뒷걸음질 쳤다. 하이트진로는 김 대표 부임 이후 한 번도 오비맥주를 넘어서지 못했다. 김 대표의 임기는 내년 3월이다.

한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소속 회원사 관계자는 “주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 대부분 업장이 한 회사 브랜드 맥주를 두 배로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결과적으로 하이트진로의 두 맥주끼리 경쟁하는 꼴이 됐다”며 “현장에서 보면 소주와 맥주의 영업적인 시너지 효과도 안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