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됐던 ‘대표이사 집중투표제 배제’ 안건이 26일 KT&G의 주주총회에서 통과됐다. 이는 국민연금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가 집중투표제 취지에 반한다는 이유에서 반대 의견을 권고한 사안이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하려는 이사의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식 한 주를 가진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6명의 이사를 선임하게 될 때 주식 한 주를 가진 주주는 6개표를 던질 수 있다. 한 사람에게 몰아서 투표도 가능하기 때문에,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키는 데 용이하다는 점에서 소액주주 강화 제도 중 하나로 꼽힌다.
KT&G에 따르면 이날 대전 대덕구 KT&G 인재개발원에서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를 통해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대표이사 사장과 그 외 이사를 구분해 뽑자는 정관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KT&G는 이사를 선임할 때와 대표이사 사장을 뽑을 때를 구분해서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KT&G 관계자는 “향후 대표이사 사장 선임 안건은 주주총회를 통해 전체 주주의 찬반 의사가 정확히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KT&G의 ‘대표이사 집중투표제 배제’ 안건에 대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는 반대를 권고한 바 있다. 수년째 KT&G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행동주의사모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와 국민연금공단 등도 반대 의사를 표했다. 대표이사 선임을 할 때에는 주식 1주당 1표만을 행사할 수 있어서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표이사를 선임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점이 소액주주 권리 강화와 배치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주총 결과에 따르면 KT&G 주주들은 소액주주 권리 강화보다는 기업 경영의 안정성에 더 가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의 발언권 강화의 효과를 지니는 반면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또 대다수 주주들은 대표이사가 아닌 이사의 선임에 한해서 집중투표제를 시행해도 소액주주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다고 봤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KT&G가 원하는 대로 ‘대표이사 집중투표제 배제’ 안건을 통과시켜도 소액주주 목소리를 대변한 인물이 여전히 이사회에 진입할 여지가 있어서다.
유통업계에서는 KT&G가 주주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을 때 회사 성장과 분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주 불만이 생기고 행동주의 펀드가 그 점을 파고들 때에는 이날 주주총회와 같은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점에서다.
이를 인식한 듯 이날 방경만 KT&G 대표이사는 “수익성 제고와 성장성 가속화가 기업가치 제고의 근간이 되는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또 방 대표이사는 “빠르게 변모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해 앞으로 궐련 중심 사업에서 확장한 새로운 개념의 상품을 선보여 시장을 선두하는 지위를 확고히 하겠다”고 했다.
한편, 집중투표제는 최근 기업 주주총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도입의 기로에 서있는 회사도 있고 이미 도입을 했다가 KT&G처럼 수정을 원하는 회사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코웨이다.
코웨이에 대한 주주행동에 나선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이번 정기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 도입과 사외이사 선임안 상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의결권 자문사 ISS는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지만 이사회 구성 등 기업의 개별적 상황이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경우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KT&G의 사안에서 집중투표제의 순기능에 더 무게를 둔 듯 했던 권고안과는 정반대의 의견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회사 경영 상황에 따라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도 갈리다보니 집중투표제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다만 우리보다 앞선 일본 사례를 참고해 볼 만 하다”고 했다. 일본은 1950년 소수 주주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해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도입했지만 시행 후 기업 경영 저해, 경영권 위협 논란 등 이유로 1974년에 이르러 임의 규정으로 전환되며 의무화가 폐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