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절차가 개시된 홈플러스가 점포 운영을 정상적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상품 구색 약화로 상황이 번지는 모양새다. 홈플러스 매장에 입점한 소규모 업체들은 지난 1·2월 매출 대금 정산이 늦어진다는 점에서 매장 축소 운영을 고민하고 있다. 식품 제조사들도 줄줄이 홈플러스 납품 중단을 결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상품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대형마트를 찾는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 구색이 갖춰진 곳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물건을 사고 싶은데, 사려는 물건이 없고 가격 경쟁력도 잃으면 그 점포를 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마트는 오전 10시 30분에 개점하고 오후 10시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정상 운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찾아주고 물건이 다양하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홈플러스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단기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지만, 유통업체로서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 잇따르는 식품사 납품 중단 결정… 영세 매장은 업장 축소 검토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납품 중단을 선언하는 식품업체들이 늘고 있다. CJ제일제당과 대상, 농심, 롯데웰푸드, 동서식품, 삼양식품, 오뚜기 등이 대표적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이날 홈플러스에 대한 납품을 한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동서식품은 “대금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홈플러스에는 납품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팔도도 납품을 중단했다. 납품 중단을 고려하는 곳도 있다. 삼양식품과 오뚜기는 “납품 대금 지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며, 향후 정상적으로 지급되지 않으면 납품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업규모가 영세한 매장 입접 업체들은 업장 규모를 줄이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 1·2월 매출 정산이 이뤄지지 않아 3월에 들어갈 인건비나 재료비가 문제인 탓이다. A업장 관계자는 “지연이자를 주면서 대금을 늦게 주겠다는데 우리같이 영세한 곳은 이자도 필요 없고 돈이 당장 필요하다. 월급도 줘야 하고 식재료비도 내야 한다”면서 “홈플러스에서 팔 물건을 다른 업장으로 돌려 파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업장 관계자는 “당장 현금으로 장사를 하겠다고 해도 결제 기기 문제로 안 된다고 하는데 팔면 팔수로 돈이 묶이는 상황”이라며 “법원 승인이 나야 변제를 해준다는데 언제 정산이 되는지 그 누구도 답을 못하고 있다. 홈플러스 업장을 줄일 방침”이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홈플러스 매장에서 상품권을 사용하려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손해다. 마트 구비 물품이 부실하면 사려던 물건을 살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상품권의 가치도 떨어진다는 뜻이다. 지난 5일 CJ푸드빌과 신라면세점 등 홈플러스 상품권 제휴처들은 결제를 중단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측은 “제휴 사용 비중 자체가 크지 않고 홈플러스 마트 등에서 결제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납품 중지가 장기화하면 결과적으론 이 해명도 반만 맞게 되는 셈이다.
◇ 홈플러스, 이자 아낀 대신 유통업 경쟁력 훼손 불가피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한 직접적인 이유는 신용등급 하락이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자금조달비용이 높아지다 보니 이를 기업회생 신청으로 타개하려 했다는 것이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신청을 ‘선제적 조치’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유통업계에서는 홈플러스의 행보가 소탐대실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자는 좀 아낄지 몰라도 소비활동(쇼핑)에 대한 평판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당장 식품 제조사들이 납품을 중단하면 매대가 빈다. 소비자는 상품 구비가 부실한 마트를 찾지 않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타임세일이나 할인 마케팅 등 비용과 노하우를 활용해 오랜 시간 쌓아온 평판을 쉽게 무너뜨릴 상황에 빠졌다”면서 “홈플러스에 가면 물건을 다양하게 비교해서 싸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훼손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 했다.
식품회사 관계자는 “상품 유통속도가 한번 느려지만 적극적으로 물량을 배치하지 않는다. 괜히 물건을 많이 넣었다가 악성 재고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번 일로 소비자 발길이 뜸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홈플러스는 불안심리를 다독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업회생에 들어가도 상거래 채권은 정상적으로 처리되고 마침 법원 승인도 났다는 점도 강조한다. 결제 지연 문제도 금방 해결될 테고 납품 중단도 곧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지난 4일에 법원 승인을 기다리느라 잠시 변제가 일시 중단됐지만 회생절차 개시로 일반 상거래 채권에 대한 지급도 재개됐다”면서 “가용자금이 6000억원을 웃도는 상황이라 일반상거래 채권을 지급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순차적으로 전액 변제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