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늙고 싶다는 바람은 2025년 을사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느린 속도로, 건강하게 잘 늙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저속노화(천천히 나이 듦)’가 올 한 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핵심 키워드로 꼽힙니다. 저속노화는 건강한 식단, 충분한 수면, 꾸준한 운동 등을 통해 노화 속도를 늦추는 건강 관리 방식입니다.
이와 관련 식품회사들은 최근 정희원(41) 서울아산병원 노년학과 교수 모시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정 교수는 저속노화 열풍을 이끌고 있는 당사자입니다. 저속노화 식사법,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등 저술 활동과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저속노화와 관련한 건강 상식 등을 전하고 있습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발 빠른 식품업체들은 이미 정 교수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을 시작했습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정 교수와 함께 저속노화 간편식을 개발했습니다. 영양성분이 풍부한 렌틸콩, 귀리, 현미 등 대사질환과 성인병 예방에 좋은 잡곡을 활용했고, 닭가슴살과 각종 야채를 주재료로 사용했습니다. 취향에 걸맞게 고를 수 있도록 다섯 가지 종류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편의점 간편식 국민 건강 증진 프로젝트’입니다. 유통업계에서는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해서 몸이 건강하겠느냐는 편견을 없애는 데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은 정 교수의 레시피를 활용한 햇반 렌틸콩현미밥+, 햇반 파로통곡물밥+를 지난해 11월 출시했습니다. 하얀 쌀밥은 건강에 좋지 않다면서 이런저런 잡곡밥을 찾아 헤매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출시 두 달여 만에 누적 매출은 12억원, 누적 판매량 42만개를 돌파했습니다.
매일유업의 매일두유는 정 교수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늘 즐기는 아침 식사라고 찍어 올린 영상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정 교수가 직원 식당에 나오는 메뉴를 조합해 올린 아침 식사 구성에는 양배추와 찐 계란 두 알, 두유 두 팩, 에스프레소 등이 있었습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이 영상에서 나온 두유가 매일두유였는데 이 덕분에 판매량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저속노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라고 했습니다. 매일유업에 따르면 정 교수의 영상이 나온 직후 매일두유 고단백 라인 제품의 판매량이 이전 대비 200% 늘었습니다. 작년 6월 출시된 매일두유 검은콩 고단백은 예상 판매량보다 3배가량 많았습니다.
식품업계가 저속노화 키워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남녀노소 모두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인구 중 20%는 확실히 저속노화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20%를 넘어섰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는 1024만4550명으로 전체 주민등록 인구의 20%를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대한민국 순자산 상위 1%대에 속하는 연령대입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발표한 ‘2022 대한민국 상위 1%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순자산 상위 1%를 찍은 부자들은 60대가 34.6%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50대(25.3%), 70대(21.4%) 순이었습니다.
노화에 대해선 노년층만 관심이 클 것 같지만 젊은 층의 관심사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안티에이징’ 열풍이 대표적입니다. 올리브영이 2021년 기준 20~30대 안티에이징 화장품 구매액을 비교해 본 결과, 1년 전과 대비해 매출액이 약 8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증가 폭이 가장 큽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노화를 늦추려는 시도는 20~30대부터 시작되고 몸에 좋은 먹거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카테고리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정 교수가 제시하는 저속노화식단은 정제곡물이나 단순당 섭취를 제한하고 잡곡밥, 채소, 단백질 등 혈당지수(GI)가 낮은 식재료 위주로 구성된 식단입니다. 이왕이면 맛있게, 간편하게 저속노화식단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유통업계의 신제품 공략법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식품·유통사들이 펼칠 저속노화 식단 시리즈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