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일방적으로 사업 종료를 선언하고 전 직원에 해고를 통보한 푸르밀이 2018년 오너 경영 체제에 돌입한 이후 사용한 연구비가 경쟁사의 5%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사들은 불확실한 우유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신제품 개발과 투자에 열을 올렸다. 반면 푸르밀은 비용 절감에만 나서는 등 무능력한 경영을 지속해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푸르밀은 신동환 대표이사가 취임한 2018년 이래 약 3억원을 연구비와 경상개발비로 썼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5737만원 ▲2019년 8167만원 ▲2020년 1억1016만원 ▲2021년 4128만원으로 매출액 대비 평균 0.037% 수준이다. 같은 기간 푸르밀의 판매비와 관리비는 580억원에서 523억원으로 약 11% 줄었다.
이는 신 대표 취임 당시만해도 매출이 푸르밀의 약 60% 수준이던 일동후디스가 매년 연구비로만 10억원을 넘게 쓴 것과 대조된다.
2018년 이후 일동후디스의 연구비 지출은 55억8654만원으로, 연도별로는 ▲2018년 14억9472만원 ▲2019년 15억6735만원 ▲2020년 11억5947만원 ▲2021년 13억6598만원 등이다.
일동후디스는 특히 적자를 내던 2018년과 2019년에도 매출의 1% 이상을 연구비로 사용했다.
이러한 연구비 투자에 힘입어 일동후디스는 2019년 루테인과 프로바이오틱스 등 건강기능식품과 2020년 ‘하이뮨 프로틴 밸런스’ 등을 시장에 내놓았다.
신제품 성공으로 이 회사는 2020년 1381억원의 매출과 6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엔 2212억원의 매출과 11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푸르밀의 매출은 2301억원에서 1799억원으로 줄었고, 영업손실은 15억원에서 124억원으로 늘었다.
직원들은 기업 경영에는 큰 관심이 없던 신준호 전 회장의 아들이 대표를 맡았고, 이사회 역시 신 전 회장 일가가 모두 독점하면서 회사의 독립적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성곤 푸르밀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수년 전부터 설비 투자도, 신제품 연구 개발도 하지 않았고 노조 측이 이를 경쟁 업체와 비교해 지적하면 ‘뭘 안다고 경영에 대해 지적하느냐’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7년 동안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쟁의 한 번 하지 않았다”며 “경영자를 잘못 만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라고 했다.
신동환 대표가 취임한 2018년 이후 푸르밀에는 경영진을 견제할 사외이사가 없었다. 이사회에 신동환 대표, 김재열 푸르밀 부사장 등 사내이사와 신 전 회장의 딸이자 신 대표의 여동생인 신경아 이사가 기타 비상무이사를 맡고 있었다. 신 이사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아내이기도 하다.
감사는 신 대표 선임 이후 최종윤 감사가 맡고 있지만, 직원들 사이에는 신 대표의 지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배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ESG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ESG모범규준 개정판에 따르면 “이사회에는 경영진과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으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사외이사를 두어야하며, 그 수는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규모여야 한다”고 돼 있다.
김남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팀장은 “법은 최소한 준수해야 하는 사항에만 기대다 보니 투명한 지배구조를 위해 부족한 면이 있다”며 “법령상 결격사유가 없더라도 외부 전문가에 의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견제 장치가 마련돼야 지속경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