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관가에서 물가 정책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공무원들은 최근 가격이 급격히 오른 품목들을 “먹지 말자”는 농담을 한다. 작년 달걀 가격이 한창 올랐을 땐 식당에서 계란 말이를 먹지 말자고 했고, 최근에는 배춧값이 급격히 오르면서 “김치를 적당히 먹자”고 한다.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가격이 크게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부터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커피를 그만 사먹자”는 농담도 나오기 시작했다. 한 잔이라도 덜 마셔서 커피 가격이 오르는 것을 막아보자는 슬픈 농담이다. 그만큼 정부는 커피 가격이 내리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하지만 커피 가격은 내리기는 커녕 ‘언제 오를지 모르니 시시각각 동향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27일 프랜차이즈 업계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지난 6월 28일부터 커피 생두(로스팅하기 전의 상태) 수입 때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고, 커피 원두 수입 전량에 대한 할당관세를 지난 7월 20일부터 적용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할당관세를 통해 수입되는 커피 원두에 대한 관세율을 0%로 떨어뜨렸다.
세제혜택을 발표한 이후 국제 원두가격, 환율 및 물류비 상승 등으로 국내에 수입되는 생두 수입 가격도 상승세가 한 풀 꺾인 것도 정부가 커피 가격을 주시하는 이유다.
미국 뉴욕 국제상품선물거래소(ICE)에서 거래되는 아라비카 커피 선물의 최근 월물 가격은 지난 23일 기준 1파운드(약 454g) 당 2.20달러를 기록했다. 아라비카 커피 선물은 지난 8월 말 2.39달러까지 올라갔으나 약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관세청의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수입되는 생두 가격은 8월 들어 7119원으로 지난 7월 7221원보다 1.52% 떨어졌다. 정부는 커피 업계에 생두 수입 가격도 내려갔고, 세제혜택도 주고 있으니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커피 가격을 인하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두 할당관세는 기획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커피 회사들은 커피 가격을 내리기는 커녕 올리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스타벅스코리아를 시작으로 투썸플레이스, 할리스, 엔제리너스, 탐앤탐스 등 주요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100~400원 안팎의 가격 인상에 동참했다. 커피빈코리아는 올해 두 차례에 걸쳐 가격을 인상하기도 했다.
커피업체들은 정부의 가격 안정 요청을 받아들이기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일단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할당관세와 부가세 면세 등은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 관계자도 “‘저희는 절대 가격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최대한 가격 방어를 해보려 노력은 하고 있으나, 원두 가격 외에도 가격 인상 요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우리나라가 주로 원두를 수입하는 나라들인 미국·콜롬비아·베트남·유럽 등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이미 관세가 없다. 커피를 수입하는 회사들은 다양한 국가로부터 생두를 들여오고 있는데, 이 가운데 관세가 붙는 국가는 네곳 뿐이다. 나머지 콜롬비아 등 주요 생두 수입국은 다 FTA를 체결한 곳들이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들이어도 관세는 2%에 불과했다”며 “커피 생두 가격이 2배로 올랐는데 2%를 면제해준다고 해서 큰 혜택을 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전국에 1700여개 매장을 거느린 1위 업체 스타벅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커피 프랜차이즈의 경우, 생두가 아니라 해외에서 볶은 원두를 수입해 오기 때문에 면세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게다가 면세 혜택을 받더라도, 전체 비용에서 원두가 차지하는 비중이 5% 안팎으로 매우 낮다는 점도 이 같은 세제 혜택이 탁상행정으로 비판받는 이유다. 물가 상승에 따른 인건비 인상, 임대료 상승 등이 커피 가격에는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입장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1시간 당 9160원인데, 현장에서는 1만원 이상의 급여를 줘야 카페에서 일할 인력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최근 종이컵 등 원부자재의 가격 상승과 낙농진흥회의 원유(우유의 원재료) 가격 인상에 따른 우유업체의 가격 인상이 예고되고 있다는 점도 업계에서는 커피 가격 인상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 대형 커피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오는 12월부터 일회용컵 사용에 따른 부담금을 부과하는 정책이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할당 관세, 부가세 면제 등)혜택을 볼 수 없는 정책을 시행해놓고 생색을 내는 것보다는 직접적인 가격 부담으로 작용하는 정책의 시행을 잠시 보류하는 등의 실질적인 혜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