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플랫폼 발란의 판매 대금 정산 지연 발생으로 ‘제2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부 판매자(셀러)들은 발란에서 상품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투자받았다더니 정산 지연... 발란에 무슨 일이
26일 온라인 쇼핑업계에 따르면 발란은 24일부터 판매자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정산금을 주지 못하고 있다. 자체 재무 점검 중 정산금 과다 지급 등의 오류를 발견해 재정산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회사는 전날 오후 판매자 공지를 통해 “신규 투자 유치를 위해 진행 중인 재무 검증 과정에서 과거 거래 및 정산 내용에 대해 확인할 사항이 발생했다”면서 “정산금 계상 및 지급 내역의 정합성을 확인하기 위해 전체 파트너사를 대상으로 과거 정산 데이터를 면밀하게 재검토하고 있다. 재정산 작업은 26일까지 마친 후, 늦어도 28일까지는 파트너사별 확정 정산 금액과 지급 일정을 공유할 예정”이라고 했다.
발란은 이번 정산 지연이 유동성 문제로 발생했던 티메프 사태와 다르며 지연이자도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입점사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앞서 모노그램, 티메프, 알렛츠 등 쇼핑 플랫폼이 모두 정산 지연을 시작으로 폐업 또는 기업회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발란의 파트너사는 1300여 곳으로 알려진다.
판매자들은 서울 강남구 발란 본사를 찾아 정산을 요구하고 있다. 전날 저녁엔 많은 이들이 본사에 몰려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전날 발란 본사에서 진행된 정산 관련 미팅에 참석한 한 입점업체 관계자는 “회사가 공지 사항만 되풀이했다”며 “투자자에게 돈 받은 거 맞냐? 우리에게 줄 돈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피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전했다.
발란은 이날 전 직원 재택근무를 시행하며 외부인의 본사 출입을 통제했다. 상황이 이렇자 ‘럭스보이’ 등 일부 입점사는 발란에서 상품을 내렸고, 또 다른 판매자들은 추가 거래를 막기 위해 상품을 품절 처리했다.
발란에서 주문받은 물건을 모두 취소했다는 한 판매자는 “거래를 취소하면 고객보상금이 빠지지만, 물건 값을 떼이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다”며 “입점사별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판매대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발란, 완전자본잠식 상태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2023년 발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발란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77억원으로 완전 자본 잠식 상태다. 이로 인해 발란은 감시인으로부터 계속기업가치 불확실 지적을 받았다. 당시 외부감사인인 삼도회계법인은 “향후 회사의 경영성과 및 유상증자에 대한 최종 결과에 따라서 좌우되는 중요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발란은 지속적으로 자금 조달을 시도했으나, 명품 수요가 줄고 티메프 사태 등으로 플랫폼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면서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3000억원까지 찍었던 기업가치를 300억원으로 깎아 지난달 실리콘투로부터 150억원 규모의 조건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먼저 75억원을 받고, 나머지는 9개월 뒤인 11월 ▲직매입 매출 비중 50% 이상 ▲매월 영업이익 흑자라는 마일스톤을 달성할 시 받는다는 조건이다.
그러나 한 달도 안 돼 판매자 정산 지연 사태가 발생하면서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선 발란이 투자 유치 후 직매입 매출 비중을 늘리는 과정에서 입점사들의 거래액이 줄자, 현금 흐름이 악화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입점 판매자들에 따르면 발란은 이달 들어 직매입 비중을 올리기 위해 입점사 대상 쿠폰 발행을 대폭 줄였다. 한 판매자는 “이달 1일부터 발란이 쿠폰을 줄이면서 매출이 반토막 났다”라고 말했다.
일부 판매자들 사이에선 PG(전자결제대행)사를 통해 정산을 받으려는 움직임도 일었다. 이에 이날 발란의 정산 서비스를 하는 대행하는 하이픈코퍼레이션은 “발란의 정산금 지급과 관련하여 인프라만 제공할 뿐 정산 자금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선 지난해 9월 발란이 도입하기로 한 에스크로 시스템(은행 등 제3자가 대금을 맡아둔 뒤 결제 확정 시 정산하는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당시 발란은 티메프의 대규모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로 인해 재무 상태가 취약한 발란에 대한 판매자들의 불안이 고조되자, 에스크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발란 측은 조선비즈에 “확인 중”이라고 답했다.
◇트렌비·머스트잇 “정산 지연 문제없어”
발란과 함께 소위 ‘명품 플랫폼 3대장’으로 불리는 트렌비, 머스트잇 등 경쟁 플랫폼에 대한 불신도 확산하고 있다. 이에 트렌비는 전날 판매자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하고 현금성 자산이 80억원이 있다고 밝혔다. 트렌비가 공개한 2024년 결산 재무제표에 따르면 당좌자산은 약 80억원이며, 이중 파트너 정산 예정 부채 35억원을 뺀 현금성 안전자산은 약 45억원이다.
트렌비 관계자는 “파트너에 지급 예정 건의 2.3배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을 바탕으로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며 “업계에서 가장 빠른 3주 이내의 정산을 지속하고 있다. 파트너의 자산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거래액을 부풀리거나, 무리한 쿠폰을 발행해 현금 자산을 만드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머스트잇 역시 정산 지연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머스트잇 관계자는 “작년 말 자산 총계는 111억원, 유동자산은 110억원, 유동부채는 41억원으로 유동자산이 부채 대비 2.5배 높은 상황”이라며 “이제껏 정산 지연 문제 발생한 적 없으나, 경쟁사 이슈로 입점 판매자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라고 전했다.
현재 발란은 전날 공지 이후 새로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 사이 판매자들 사이에선 플랫폼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한 판매자는 “이번에 정산 대금을 받더라도 발란에서 상품을 팔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란은 정산금 지급 여력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발란 관계자는 “현재 실리콘투로부터 75억원의 투자금을 받은 상태”라며 “공지한 대로 정산금 재산정이 끝나면 대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