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발판으로 빠른 성장을 이어온 LG생활건강(051900)아모레퍼시픽(090430)이 위기에 빠졌다. 중국 시장에서의 지위가 예전 같지 않아서다. 중국 현지 화장품 브랜드가 성정하고 글로벌 브랜드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설자리가 줄고 있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인수합병(M&A), 지분 인수를 통한 시장 다각화에 나서고 있지만,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은 지난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이 1년 전보다 2.9% 감소했다. 2005년 3분기 이후 분기 매출이 줄어든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특히 화장품 부문 매출은 1조267억원으로 1년 전보다 10% 넘게 줄었다. 그나마 고급 화장품 브랜드 ‘후’의 매출 비중이 증가하고, 신제품이 출시되면서 영업이익은 2154억원으로 9% 늘었다.

LG생활건강이 중국에 출시한 고가 브랜드 '후'. / LG생활건강 제공

중국 사업 부진이 LG생활건강 매출 하락을 이끌었다. LG생활건강은 전체 매출의 약 4분의 1을 중국에서 올릴 정도로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중국 법인의 매출 자체가 줄고 있다. 지난 1분기까지만 해도 전년 대비 46% 수준의 고성장을 기록했으나 2분기는 11%에 그쳤고, 3분기는 2%로 떨어졌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50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2%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조1089억원으로 1.9% 증가한 데 그쳤다. 역시 중국 시장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아모레퍼시픽 해외 매출의 80%를 차지하는데 3분기 해외 매출이 384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85억원 수준에 그치며 57% 가까이 감소했다.

K뷰티라 불리며 중국 시장을 주도해온 국내 화장품의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IBK투자증권이 분석한 중국 내 상위 20개 화장품 기업의 성장률 추이에 따르면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성장률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2016년 32.1% 성장률을 기록했던 LG생활건강은 지난해 15.7%로 떨어졌다. 아모레퍼시픽은 2016년 23.8%에서 지난해 –4.8%로 역성장 했다.

안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2016년 7월 ‘한류’에 힘입어 중국 시장에서 호황을 누릴 당시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K뷰티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애국심 고취 등의 영향으로 중국의 젊은 층은 ‘화시즈(花西子)’와 같은 중국 현지 화장품 업체를 더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이 선점했던 고가 화장품 시장도 변하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화장품 시장 규모는 5199억위안(약 96조원)으로 집계됐는데, 중국 기초화장품 시장 점유율 상위 10개 브랜드 가운데 국내 화장품 브랜드는 1곳도 없었다. 중국 화장품 브랜드인 ‘바이췌링(百雀羚)’과 ‘자연당(自然党)’이 각각 4위, 6위였고, 나머지는 로레알 등 글로벌 브랜드가 차지했다.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 / 아모레퍼시픽 제공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광군제를 통한 4분기 실적 회복을 노리고 있지만, 4분기에도 영업환경 개선은 요원한 상황이다. 헝다 사태 등으로 소비 심리 하락이 심화하고 있어서다. 박은경 삼성증권(016360)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사치 자제 분위기를 조성한데다 화장품 마케팅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제 등을 잇달아 시행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최근 들어 본격화한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사업 영토 확장이 자리를 잡아야만 실적 회복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미국 화장품 업체 ‘뉴에이본’을 약 1450억원에 인수하는 등 중국 시장 의존도 낮추기에 돌입했다. 올해 초에는 뉴에이본 사명을 ‘더 에이본 컴퍼니’로 바꾸고, 사업 키워드로 MZ세대, 디지털화, 클린뷰티를 제시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달 29일 화장품 제조 및 판매 업체 ‘코스알엑스’의 주식 19만2000주를 1800억원에 취득해 38.4%의 지분을 가진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민감성 피부 기능성 화장품을 만드는 코스알엑스는 미국, 유럽 등에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잔여지분도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인수할 예정”이라며 “시장 확장 전략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조미진 NH투자증권(005940) 연구원은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우선 중국 내 온라인 채널을 강화해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동남아시아, 북미, 유럽 등으로 시장을 넓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면서 “중국 내 K뷰티의 매출 비중은 여전히 오프라인이 50% 이상이어서 온라인이 커지는 중국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