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커머스 업계가 성장 둔화와 수익성 악화로 침체에 빠진 가운데, 버티컬(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커머스 업체 에이블리가 2024년 12월 알리바바로부터 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지난해 7월 일어난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이후 이커머스 업계에서 이뤄진 최대 단일 투자다. 알리바바가 한국 플랫폼 기업에 지분을 확보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해당 투자를 통해 에이블리는 기업가치 3조원을 인정받으며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기업 지위에 올랐다.

/에이블리 제공

16일 관련 업계는 알리바바가 에이블리를 선택한 이유로 에이블리의 독창적 사업모델을 지목한다. 에이블리는 2018년 모바일 앱 출시 이후, 판매자(셀러)를 직접 창출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기존 오픈마켓 모델이 셀러의 자율 운영을 기반으로 한다면 에이블리는 상품 기획·재고관리·배송·반품 등의 모든 유통 과정을 플랫폼이 일괄적으로 처리한다.

예를 들어 인플루언서 셀러가 동대문 상품을 활용해 사진 한 장을 올리면 에이블리가 다른 모든 걸 대신해 주는 식이다. 당시엔 인플루언서 공동구매나 브랜드 협업이 일반화되기 전이라 큰 주목을 받았다. 에이블리는 기존 셀러들을 플랫폼에 유치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셀러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다른 플랫폼과의 차별성을 확보했다.

인플루언서 셀러의 경우 판매가 이뤄지면 일정 수익(통상 판매액의 10% 수준)을 받고, 에이블리는 남은 차액에서 운영비를 확보하는 구조다. 이 경우 마진율이 더 높다는 장점이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또 초창기에는 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는 정책으로 인플루언서들을 끌어모으면서, 상품 다양성이 확대되고 소비자도 자연스레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됐다. 아울러 인공지능(AI)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사업 영역을 의류 외 화장품·인테리어·식품 등으로 확장했다.

이에 에이블리는 지난해 연간 거래액 2조원을 돌파했고, 매출액은 전년 대비 30% 증가한 3343억원을 기록했다. 광고비 절감 등 수익성 개선을 통해 흑자전환에도 성공했다. 에이블리는 지난 1월 기준 약 900만명의 월간 활성 이용자(MAU)를 확보했다. 이는 버티컬 커머스 업체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알리바바 입장에선 한국 이커머스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많은 사용자 기반을 가진 에이블리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에이블리가 한국 내 ‘틱톡이 아닌 플랫폼’ 중 알리바바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가장 빠른 경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Z세대 여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성장 플랫폼을 통해 한국 소비자의 트렌드와 데이터, 유통 구조도 학습할 수 있다.

에이블리로 입장에선 이번 투자 유치가 자금 확보와 동시에 유니콘 지위를 공식화하며 국내외 투자 시장에서 가치를 제고하는 기회가 됐다.

다만, 알리바바가 중국 자본이라는 점에서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 정서 및 지배구조 리스크가 향후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 콘텐츠 커머스의 확산도 에이블리에 위협이 되고 있다. 유튜브 쇼핑 등 인플루언서들이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도 직접 제품을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어 에이블리가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패션·소비재 분야 인수합병(M&A)을 전문으로 하는 MMP의 장민경 이사는 “플랫폼 간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국내 패션 플랫폼이 글로벌 전략적 투자자와 연결된 의미 있는 사례”라며 “앞으로도 에이블리처럼 탄탄한 사용자 기반과 실적을 갖춘 기업들은 해외에서 더 큰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