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K) 뷰티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국내 화장품 시장 판도가 변화하고 있다. 전통 강자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1·2위를 지키는 가운데 구다이글로벌과 에이피알 등 신흥 강자들이 이들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반면 기존 3위 자리를 지키던 애경산업의 입지는 약화하는 형국이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뷰티 시장판도 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구다이글로벌의 급성장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1조원 클럽’에 입성했다. 지난 2023년 14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1년 새 무려 7배가량 확대된 셈이다. 공격적 인수합병(M&A)으로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그래픽=정서희

구다이글로벌은 2016년 천주혁 대표가 설립한 화장품 제조 기업이다. 설립 초기 국내 화장품의 해외 총판을 주로 담당했으나 2019년 조선미녀를 인수해 북미에서 인기를 끌었다. 다만 국내보다 미주·유럽·동남아 등 해외 시장을 노려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국내에서 존재감이 커진 것은 지난해부터다. 구다이글로벌은 지난해 레드쿠션으로 알려진 티르티르, 틴트로 유명한 색조 브랜드 라카코스메틱, 스킨케어 브랜드 스킨1004와 화장품 유통 플랫폼 등을 보유한 크레이버코퍼레이션 등을 인수했다. 지난해 화장품 M&A 매물을 구다이글로벌이 사실상 독식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작년 인수한 3곳의 기업 모두 K뷰티 열풍으로 호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출 기준 티르티르는 약 3000억원, 크레이버코퍼레이션 약 3000억원, 라카코스메틱스가 약 1000억원 규모로 각각 2~3배씩 전년 대비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다이글로벌이 조선미녀로만 낸 별도 기준 매출도 3000억원에 달한다.

코스피 상장사인 에이피알은 지난해 연결 기준 잠정 실적을 집계한 결과, 매출 7228억원, 영업이익 1227억원, 당기순이익 1062억원을 기록했다. 뷰티 디바이스와 화장품을 동시에 판매하는 에이피알은 특히 북미 시장에서 ‘메디큐브’ 브랜드가 인기를 끌면서 실적이 개선됐다. 제로모공패드 등 일부 제품은 아마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미국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3.3% 증가했다. 에이피알은 올해 1조원 클럽 입성이 목표다.

반면, 만년 3위였던 애경산업은 주춤한 상태다. 애경산업의 지난해 매출은 6791억원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영업이익은 468억원으로 전년 619억원에서 24.4% 감소하며, 성장세가 둔화된 모습을 보였다. 구다이글로벌과 에이피알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외 성과가 부진해 시장에서의 입지가 약화한 모습이다.

K뷰티의 인기에 힘입어 ‘2강 1중’ 형태였던 기존의 화장품 시장 구조가 ‘2강 2중’으로 바뀐 것이다. 각각 지난해 매출 3조8000억원대, 2조8000억원대를 기록한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여전히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구다이글로벌과 에이피알이 해외 인기를 바탕으로 급성장하면서 기존 강자들도 더 이상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다이글로벌과 에이피알 등 신흥 주자들의 성장은 K뷰티의 전 세계적 인기가 바탕이 됐다. K뷰티의 지난해 수출액은 102억달러로, 역대 최대 수출액을 기록했다. 2012년 10억달러를 넘긴 이후 12년 만에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프랑스를 제치고 수입 화장품 시장 수입액 1위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해외 인기를 바탕으로 한 구다이글로벌과 에이피알의 성장 잠재력은 아직 충분하다”며 “이들의 해외 매출이 아직 아마존 등 온라인 채널 위주이기 때문에 올해 오프라인 진출을 통해 저변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