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서울 영등포구의 페어몬트 앰버서더 내 ‘마리포사(Mariposa)’ 레스토랑에서 ‘A Jazz-Fueled Evening: Five Chefs Under the Open Sky’ 행사를 마치고 셰프들이 기념 사진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마리포사의 이대건 셰프,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 JL 스튜디오의 지미 림 셰프, 소울의 김희은, 윤대현 셰프. /이정수 기자

완연한 봄기운이 감도는 3월의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서 특별한 미식 갈라 디너가 열렸다. 싱가포르와 한국을 대표하는 셰프들이 함께한 이번 행사는 계절의 감성을 요리에 담아낸 향연으로, 미식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23일, 페어몬트 내 ‘마리포사(Mariposa)’ 레스토랑에서는 ‘A Jazz-Fueled Evening: Five Chefs Under the Open Sky’라는 이름 아래 갈라 디너가 펼쳐졌다. 페어몬트 서울의 총주방장 이대건 셰프를 중심으로, 미슐랭 1~3스타를 보유한 세계적인 셰프들이 모여 각자의 개성과 철학을 담은 요리를 선보였다.

JL 스튜디오의 새우, 바닐라 커리 등을 활용한 한입 거리. /이정수 기자

본격적인 코스에 앞서 마리포사 야외 테라스에서는 각 셰프들이 준비한 ‘한입 요리’로 오프닝을 장식했다. 마리포사는 레스토랑의 상징인 나비를 형상화한 아무즈 부쉬와 바삭하게 튀긴 주꾸미 요리를 내놓았고, JL 스튜디오는 바닐라 커리와 새우를 곁들인 쌈 요리 등으로 이국적인 맛을 전했다. 스와니예는 누룽지에서 영감을 받은 애피타이저를, 소울은 마스카포네와 전복을 활용한 감각적인 요리를 선보이며 각자의 색깔을 드러냈다.

특히 JL 스튜디오의 오너 셰프 지미 림(Jimmy Lim)은 미슐랭 3스타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대만과 싱가포르의 이국적인 풍미를 한국적 요소와 접목해 색다른 미식 경험을 완성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셰프들도 다채로운 요리로 힘을 보탰다.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스와니예의 오너 셰프 이준, 1스타 레스토랑 소울의 오너 셰프 김희은, 그리고 윤대현 셰프는 각자의 시그니처 메뉴에 제철 식재료를 더해 봄을 한 접시에 담아냈다.

스와니예가 준비한 한입 거리. 누룽지, 곶감 등 한국적인 재료를 활용한 것이 특징. /이정수 기자

8가지 메뉴로 구성된 갈라 코스에서는 셰프들의 개성과 협업의 미학이 오롯이 느껴졌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의 요리에 단일 셰프가 아닌, 복수의 셰프가 함께 참여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첫 코스인 갑오징어, 방아 토마토 워터,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활용한 요리에서는 마리포사와 소울의 셰프들이 함께한 흔적이 엿보였다.

갑오징어를 면처럼 가늘게 썬 뒤, 방아의 향긋함과 토마토의 감칠맛이 어우러진 육수에 비벼 먹는 이 요리는 화사한 봄을 닮았다. 산뜻한 시트러스 향은 봄날 깨어나는 햇살을 떠올리게 했고, 한입 삼킨 뒤 퍼지는 갑오징어의 은은한 쿰쿰함은 마치 땅의 향처럼 깊게 다가왔다.

소울과 마리포사가 합작해 만든 갑오징어,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방아 토마토를 활용한 요리. /이정수 기자

다음에는 방어, 스타프루트 소스를 활용한 요리와 들기름 국수가 같이 주어졌다. JL 스튜디오와 스와니예가 합작한 위 접시는 동남아의 매력 속에서 한국적인 맛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스타프루트 소스가 별미다. 은은히 매콤함이 올라오는 아쌈 오일이 달콤한 스타프루트와 만나 특유의 동남아의 느낌을 줬다. 약간의 중화풍과도 비슷했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깐풍기 소스를 생각하면 편하다. 달콤함 속에 피어나는 매콤함이 기분 좋은 마무리를 선사했다.

JL 스튜디오의 림 셰프는 요리 중간 중간에 은은히 동남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식사를 설계한 듯 보였다. 랍스터를 염장한 다시마와 카이프리 향신료를 둘러 쪄낸 요리가 그 예시다. 야들 쫄깃한 랍스터 살을 맛보고 있다보면 꽃향과 닮은 향신료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소울과 함께한 옥돔 구이에서는 된장과 락사를 활용해 익숙하면서 이국적인 맛을 냈다. 묵직한 된장 소스에서 새콤한 락사가 은근히 고개를 들며 오묘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식사와 함께 흐르는 라이브 재즈 공연은 그 풍미를 배로 느끼게 해줬다.

JL 스튜디오와 스와니예의 방어 요리. 스타프루트 소스와 아쌈 오일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정수 기자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모든 업장의 셰프들이 함께 준비한 메인 한우 메인 코스였다. 잘 구워낸 스테이크 위로 더덕 소스가 올라갔고, 그 주변에는 소꼬리 쌈장, 낙지와 봄나물, 사프론 아란치니가 주어졌다. 소울의 낙지 봄나물 요리는 첫입부터 숯불 향이 나 마치 전라남도의 호롱구이와도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봄나물 역시 파릇한 맛을 입안에 돌아 완연한 봄의 맛을 느끼게 했다.

식사가 끝난 뒤, 참여한 셰프들은 이번 경험을 ‘특별한 교감의 시간’으로 회고했다. 김희은 셰프는 “이번 코스를 위해 몇 개월간 열심히 준비했는데, 손님들이 즐기셨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전했고, 윤대현 셰프도 “마음껏 즐기셨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손님들도 준비된 미식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김모씨(41)는 “싱가포르나 동남아 음식은 다소 생소했는데, 한식과도 이리 잘 어울릴지 몰랐다”며 “각각의 요리가 모두 훌륭했지만 전복과 옥돔 구이가 가장 생각날 것 같다”고 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 코스인 한우 요리. JL 스튜디오, 마리포사, 스와니예, 소울 셰프들이 전부 참여했다. /이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