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 그룹인 롯데가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받자, 재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4.13 총선 이후 잠잠하던 ‘사정당국’의 칼날이 어디로 날아들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재계는 검찰이 비자금 조성 혐의에 초점을 맞추고 롯데그룹 본사와 계열사, 신동빈(61) 회장의 집무실·자택 등 17곳에 동시 다발적인 작전을 진행한 것에 대해 준비된 ‘표적수사’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박근혜 정권 후반 여소야대 정국에서 검찰, 국세청, 경찰까지 나서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수사에 재계 관계자들은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해운·조선업종을 비롯해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반기업적인 정서와 함께 투자·채용 감소 등 악재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한 4대그룹 계열사 사장은 “롯데에 무슨 일이 있는거냐”며 “가뜩이나 경제가 안 좋은데 기업들의 심리가 불안해지면 곳간을 닫는 등 부작용이 잇따를 것”이라며 우려했다.
◆ 사정당국, 롯데 수사로 ‘신호탄’ 쐈다
재계는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로 “사정당국이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고 분석했다.
검찰은 10일 신동빈 회장이 해외 출장중인 틈을 타 롯데그룹 본사와 롯데호텔, 롯데정보통신, 대홍기획, 롯데홈쇼핑, 롯데시네마 등 계열사, 신 회장의 집무실·자택,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집무실 등 17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 실시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 조재빈)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손영배)가 수사관 200여명을 투입할 정도로 대규모 작전을 연출했다. 롯데그룹 핵심 임원 4~5명은 출국금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롯데 수사가 비자금 조성 혐의를 놓고 이미 계획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계열사간 자산거래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포착했고, 제2롯데월드 건설 및 인허가 과정에서 정치권 로비 의혹, 오너가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 수사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롯데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두 아들인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회장의 소송전이 이어지면서 그룹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졌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범위가 방대해 구체적인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상당 기간 숨 죽이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는 이른바 ‘효성그룹 형제의 난(亂)’ 사건도 수사중이다. 이 사건은 조석래(81)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문(47) 전 효성 부사장이 2014년 10월 형인 조현준(48) 효성 사장 등을 횡령, 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으로 작년 5월 조사부에서 특수4부로 재배당됐다.
효성은 조 전 부사장이 조 사장과 효성 전·현직 임직원 9명을 고발한 사건으로 수사를 받았다. 최근 검찰은 유명 갤러리 대표 박모씨를 소환해 효성 계열사가 주도한 ‘아트(art) 펀드’가 조현준 사장의 미술품을 고가로 사주는 수법으로 이득을 보게 했는지 조사했다. 조석래 회장과 조 사장은 이와 별도로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돼, 올해 1월 1심에서 각각 실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과거 ‘재계의 무덤’이었던 대검 중수부의 부활로 평가받는 검찰 부패범죄특벌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첫 수사 대상으로 공적자금 비리 의혹에 휩싸인 대우조선해양을 겨눴다.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9월과 올 1월 서울중앙지검과 창원지검에 남상태·고재호 전 사장 등 경영진을 처벌해달라는 진정을 냈다. 특수단은 지난 8일 대우조선해양 본사와 산업은행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대우조선해양을 둘러싼 분식회계, 경영진 비리와 공적 자금 투입 과정 비리 여부 등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법조계를 뒤흔든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는 부영그룹의 조세포탈 혐의에 대한 국세청 고발 사건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올해 초 전직 부영그룹 직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등 국세청 조사내용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부영그룹은 검찰과 악연이 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27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2004년 구속 기소된 전력이 있다. 2008년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또 다시 검찰 수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동부그룹도 검찰의 칼날 위에 서 있다. 김준기(72) 동부그룹 회장과 고원종(58) 동부증권 사장은 작년 말 동부증권이 자금 700억원을 동부대우전자 인수에 부당하게 사용한 혐의(배임)로 고발됐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부장 이진동)가 맡고 있다. 검찰은 현재 수사 초기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남부지검도 6월 8일 내부 정보를 입수해 한진해운 주식을 매각하고, 손실을 회피한 혐의를 받은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을 불러 조사했다.
◆ 국세청·금감원·경찰 수사 줄줄이 진행중
검찰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사건의 당사자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경찰이 이미 수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최태원 SK 회장과 SK의 탈세 의혹 사건을 조사했다. 최태원 회장의 내연녀로 알려진 김모씨가 2008년 1월 SK건설로부터 구입한 반포의 한 아파트를 SK해외법인에 판 게 문제가 됐다. 김씨는 15억5500만원에 구입한 아파트를 팔면서 8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SK나 김씨의 탈세 여부를 국세청이 집중 조사했다. 금감원도 이들이 외국환거래법상 신고의무를 지켰는지 조사했다.
코오롱그룹은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2009년 분할된 ㈜코오롱과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조사를 받았다. 이웅렬 코오롱 회장 등이 부친인 이동찬 명예회장의 별세 후 지분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포탈한 혐의가 수사 대상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이명희 회장의 차명 주식 보유가 문제돼 국세청의 조사를 받았다. 금감원은 국세청의 조사 뒤 이 회장이 그룹 임직원 명의로 보유하던 주식을 실명전환하자 ‘경고’ 조치로 마무리했다.
SK텔레콤과의 인수합병 논란을 빚은 CJ헬로비전은 경찰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CJ헬로비전 소속 한 지역방송사가 협력업체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과다 계상하고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CJ헬로비전은 분식회계 의혹도 받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권 말기라고 안심했던 기업들이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경제살리기 분위기 속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진행되는 ‘군기잡기’는 우리 경제 성장에 마이너스 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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