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기업 구조조정이 총선 이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가 한진해운의 최대 주주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내놓을 정도의 구조조정이 없이는 추가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21일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사내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백의종군의 길을 택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처럼, 한진해운도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 포기 수준의 구조조정 방안이 없으면 더이상 지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달 말 조양호 회장을 직접 만나 이 같은 정부의 입장을 직접 전달했다. 경영권을 내놓을 정도의 고강도 구조조정을 받고 지원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지원 없이 독자생존을 모색할 것인지 조 회장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진그룹 실무자들은 “더 이상 한진해운에 자금을 넣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산은 등 채권단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이 요구하는 추가 투자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일부 계열사는 매각해야 하는 수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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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서별관회의 열고 한진해운 구조조정 집중 점검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조만간 안종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참여하는 일명 '서별관회의'를 열고 조선과 해운 구조조정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특히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을 담보로 한 한진해운의 강력한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집중 점검할 방침이다.
한진해운은 그간 구조조정 칼 끝에서 벗어나 있었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 구조조정에 앞서 채권단과 조건부 자율협약에 돌입한 뒤 사채권조정과 용선료 인하 협상에 나서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우선 현대상선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뒤 한진해운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총선 이후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기재부, 해양수산부 등이 참여해 산업별 구조조정 방안틀을 모색하는 범정부협의체가 재가동되고 유 부총리가 기업구조조정을 직접 챙기겠다고 말하는 등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한진해운 역시 현대상선 못지않게 정부와 채권단이 집중 점검해야 할 '부실 뇌관'을 가진 기업이다. 정부는 당초 양대선사 유지를 위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둘 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다소 강경해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양대선사의 부실을 산업은행이 모두 떠안을 수 없다"며 "결국은 국민 혈세인데, 강력한 구조조정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 조양호 회장, 한진해운 가지려면 큰폭의 사재출연 해야
한진해운이 현대상선과 같은 구조조정 틀을 따를 경우 조 회장의 경영권은 흔들릴 수 있다. 앞서 구조조정 작업에 돌입한 현대상선의 경우, 현정은 회장이 300억원 사재를 출연하고 사내이사와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는 등의 결단을 내렸다. 지지부진했던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은 현 회장이 경영권을 담보로 가져오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만약 조 회장이 경영권 유지를 고수하게 될 경우 정부의 압박은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기대하는 수준의 구조조정에 이르지 못할 경우, 해운사 자금 지원 정책인 ‘선박펀드’는 물론 5조원이 넘는 부채의 재조정, 금융권 대출이자 인하, 여기에 유동성 지원 등의 길이 막혀버려 법정관리(회생절차)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이 만약 한진해운을 갖겠다고 한다면 상당 규모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 부채는 5조6000억원에 이른다. 당장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규모 역시 6000억원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이러한 유동성 부족분을 확인하고자 지난 2월부터 한진해운 실사에 돌입했고 실사가 종료된 1일 이후 바로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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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해운·현대상선 합병 다시 논의될 가능성도
정부는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 경영권을 포기할 경우 이미 산은 휘하로 편입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합병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니면 한진해운, 현대상선을 따로 관리하는 형태로 운영할 수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해외 해운동맹들이 이합집산을 검토하는 분위기”라며 “지금 당장 두 회사가 합병하면 해운동맹 퇴출 이슈가 불거질 수 있지만 해운동맹이 재조정되면 그때는 합병이 다시 거론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