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에 상처가 난 소년이 소리를 지르자 구석에 놓인 빨간 가방이 열리며 풍선처럼 로봇이 부풀어 오른다. 곧이어 소년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말한다. "안녕하세요. 전 당신의 개인 헬스케어 동반자 '베이맥스'입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디즈니사(社)의 애니메이션 영화 '빅 히어로'의 한 장면이다. 베이맥스는 겉보기엔 볼품없는 하얀 풍선이지만 사람의 부상을 진단하고 호르몬 상태로 감정도 파악할 수 있다. 손에는 심장 충격기가 달려 있고 팔에서는 각종 약품이 나온다. 환자를 안아서 옮길 수도 있다. 사람에게서 "만족한다"는 말을 들어야만 임무를 마친다. 그야말로 '궁극(窮極)의 개인 주치의'인 셈이다.
베이맥스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이와 기능이 비슷한 헬스케어 로봇은 이미 현실에서 쓰이고 있다. 미국 아이톤의 로봇 '터그(TUG)'는 병원에서 나온 쓰레기나 침대보 등을 걷어 배달하고, 환자에게 식사와 처방약을 가져다준다. 검사 샘플, 연구 시약 배달도 터그의 몫이다. 짐을 싣고 옮길 장소만 지시하면 정확하게 배달한다. 무선 신호로 엘리베이터를 마음대로 열고 조종하며, 음파탐지기를 이용해 사람들을 피해 다닌다. 한 번 충전하면 10시간 동안 쉼 없이 움직인다. 1대 가격은 1만달러(약 1097만원).
현재 미국에서만 터그 1000여 대를 쓴다. 캘리포니아주 엘카미노 병원은 2012년 병원 내 화물 이송에 400만달러(약 44억원)를 썼지만, 터그 19대를 투입한 2013년에는 이 비용이 30% 이상 줄었다. 약품·식사를 잘못 배달하는 사고는 생기지 않았다. 우리나라 기업 유진로봇도 터그와 비슷한 기능을 갖춘 병원 로봇 '고카트'(Gocart)를 개발, 지난해부터 미국 등지로 수출하고 있다.
미국 조지아텍의 '코디(Cody)'는 간호사를 대신한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환자의 목욕을 돕는 것이다. 카메라와 레이저를 이용, 환자 몸을 스캔한 뒤 수건이나 스펀지로 팔·다리 등을 닦아준다. 아이로봇의 'RP-VITA'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원격진료용 로봇이다. 머리 부분 화면에 나오는 의사와 대화하며 청진기와 스캐너를 활용해 의사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진찰할 수 있다. 윌로개라지의 다목적 로봇 'PR2'는 병원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PR2는 반복된 동작을 시키면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지능형 로봇이다. MIT에서 개발한 코스모봇은 자폐아를 위한 치료용 로봇이다. 함께 놀아주며 아이의 행동에 반응해 관심을 유발한다.
일본은 급속한 노령화 문제를 해결하려고 일찍부터 헬스케어 로봇에 투자했다. 착용형 로봇 '할(HAL)'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입으면 빠르게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무거운 짐도 들 수 있다. 물개형 로봇 '파로'는 치매를 앓고 있어 진짜 동물을 키울 수 없는 노인들의 심리 치료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항균 털로 덮인 피부에는 접촉 센서가 내장돼 있다. 손으로 만지면 물개 소리를 내고 목소리도 들려준다. FDA에서 2급 치료 기기 인증을 받아 요양원 등에 보급하고 있다.
이런 로봇은 모두 지난 10년 사이에 등장했다. 급속한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베이맥스를 뛰어넘는 로봇을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