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숨이 막힙니다. 쉼터가 없으면 노인들은 여름 낮 시간을 보내기가 버거워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입구에서 만난 안모(56)씨는 연신 부채질을 하며 이같이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경북과 경기, 강원 등 내륙 지역을 중심으로 폭염특보가 발령됐다. 이날 서울의 기온은 섭씨 33도를 웃돌았다.

불볕을 피해 그늘에 앉은 안씨는 "더위를 많이 탄다"고 했다. 매년 쪽방상담소의 ‘무더위 쉼터’에서 여름을 보냈지만,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무더위 쉼터는 아직 운영하지 않고 있다. 안씨는 "벌써 여름이 시작됐는데 가을까지 어떻게 버틸지 아득하다"고 했다.

9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에 문을 열어두고 있다.

무더위 쉼터는 각 지자체에서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등 공용시설에 에어컨을 달아 두고 편하게 찾아 더위를 식힐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무더위 쉼터들이 잇따라 운영을 축소하거나 아예 문을 닫은 곳이 많아 노약자들이 여름을 제대로 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돈의동 쪽방촌 인근 무더위 쉼터는 늦어도 다음달부터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지만, 정원은 20명에서 10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거리두기로 코로나 감염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돈의동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7월과 8월에는 무더위 쉼터를 열기로 결정은 했지만, 코로나 확산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운영을 하더라도 출입인원을 줄이고 잠을 자는 것도 막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돈의동 쪽방촌만의 일은 아니다. 서울시가 지난달 13일 발표한 ‘2020 여름철 종합대책’에 따르면 올 여름 서울시 내에선 4439곳의 무더위 쉼터가 운영된다. 지난해보다 670(17.8%)곳이 늘었지만, 한번에 수용가능한 인원은 절반으로 줄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결정인데 사실상 전체 쉼터 수용인원이 줄어들었다.

다른 지역의 경우 무더위 쉼터를 아예 휴관하거나 운영을 대폭 축소했다. 경기도는 지난 4일 발표한 ‘2020 폭염종합대책’에서 도내 무더위 쉼터에 임시 휴관을 권고했다. 광주광역시는 무더위 쉼터 1452곳 중 1193곳의 문을 닫았다. 대전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한 936곳 중 120여곳만 운영을 하고, 대구는 무더위 쉼터를 아예 한동안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대전광역시 관계자는 "코로나 때문에 공공기관, 은행, 종교시설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무더위 쉼터를 운영한다"며 "운영하는 쉼터에 대한 방역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 향후 코로나 상황을 봐가며 무더위 쉼터 확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9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무더위 쉼터 앞에 수용인원과 시간을 축소해 운영한다는 안내문들이 붙어 있다.

행정안전부는 무더위 쉼터의 주된 이용자인 노인과 취약계층이 더위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형 체육관’을 대안으로 내놨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등 무더위 쉼터로 이용되던 공공시설에 비해 공간이 넓은 체육관에서 2m 거리두기를 하며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에어컨을 이용하기 위해 체육관까지 갈 형편이 아니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돈의동 쪽방촌에서 7년을 거주한 조모(78)씨는 "무릎이 안 좋은 데다가 얼마 전 수술을 해서 잠시만 걸어도 숨이 찬다"며 "집 근처에 있는 무더위 쉼터는 그나마 갈만 했는데 체육관까지 가는 것은 어렵다. 가다가 열사병에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아산시 주민 지모(82)씨도 "대형 체육관을 무더위 쉼터의 대체 공간으로 사용한다지만, 가장 가까운 곳이 차로 10분이 걸리는데 노인들이 그 거리를 어떻게 걸어가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무더위쉼터 공간을 단독 수용이 가능한 곳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전문대학원 교수는 "폭염에 취약한 계층을 지자체에서 선별해 일정 기간 냉방이 되면서 혼자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여름 성수기에 대도시 모텔 등은 방이 비는 만큼 지자체에서 바우처(Voucher·보조금)를 주는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