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자동차 시장이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현대·기아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의 판매가 급감하자 새롭게 인도로 눈길을 돌렸지만, 최근 인도의 성장세마저 꺾이면서 해외 판매 부진이 계속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8월 8일 기아자동차 인도공장에서 가진 셀토스 양산 기념식에서 한국과 인도 정부 사절과 회사 관계자 등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심국현 기아차 인도법인장, 신봉길 주인도대사

4일(현지시각) 인도 자동차제조협회(SIAM)에 따르면 올들어 8월까지 인도의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194만323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3% 감소했다. 특히 8월 자동차 판매대수는 전년동월대비 33.2% 줄어든 24만8421대에 그쳤다.

지난해까지 인도는 최근 몇 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자동차 시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13억명이 넘는 인구를 가졌지만, 자동차 보급대수는 중국의 3분의 1에 불과해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는 분석이 잇따라 나왔고 인도가 중국, 미국에 이은 세계 3위 시장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침체되는 상황에서도 인도는 한동안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지난 2016년 인도의 자동차 판매대수는 전년대비 7%, 2017년에는 8.7% 각각 늘었고 지난해에도 5.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인도 자동차 시장의 성장이 꺾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분기부터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면서 인도 역시 직격탄을 맞은데다, 최근 이른바 ‘그림자 금융’이라 불리는 비은행 금융사들이 잇따라 파산해 금융 위기가 겹쳐 소비가 위축된 것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인도 정부가 완성차에 적용하는 안전과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자동차 가격 인상도 피하기 어려워졌다"며 "수요 위축이 내년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5월 현대차가 출시한 소형 SUV 베뉴를 보기 위해 인도 소비자들이 몰린 모습

인도 자동차 시장이 흔들리면서 현대·기아차도 비상이 걸렸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후 중국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성장 잠재력이 큰 인도를 ‘넥스트 차이나’로 점찍고 이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해 왔다.

인도 첸나이 1, 2공장을 가동 중인 현대자동차는 현재 65만대에서 70만대 수준인 연간 생산량을 향후 75만대 수준까지 늘리기 위해 증설에 700억루피(1조1800억원)를 투자했다. 기아자동차도 올해 인도 안드라프라데스주(州)에 연간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첫번째 공장을 완공하고 가동을 시작했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출시한 신차 중 일부를 인도에서 가장 먼저 선보이며 현지시장 공략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기아차는 지난 6월 소형 SUV 셀토스를 인도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했고 현대차는 경차급 소형 SUV 베뉴를 국내보다 앞서 인도에서 출시했다.

기아차는 지난 6월 셀토스를 인도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인도 시장 공략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왼쪽부터 마노하르 바트 기아차 인도법인 판매담당, 심국현 기아차 인도법인장, 박한우 기아차 사장

중국에서 계속된 부진에 인도마저 성장세가 꺾이면서 현대·기아차는 부진한 해외 판매실적을 좀처럼 반등시키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올들어 9월까지 국내 판매량은 54만7435대로 전년동기대비 4.1% 늘었지만, 해외 판매량은 268만3697대로 5.4% 감소했다. 이에 따라 전체 글로벌 판매량도 323만1132대로 3.9% 줄었다.

현대차는 인도에서 경쟁사에 비해 전년대비 판매량 감소 폭이 작았지만, 전체 자동차 시장의 침체를 피할 수는 없었다. 올들어 8월까지 현대차의 인도 시장 판매량은 베뉴 등 신차 출시에도 불구하고 33만6922대로 전년동기대비 7.5% 감소했다.

현대차는 하반기 들어 인도에서 판매량이 큰 폭으로 줄어들자 지난 8월 재고 소진을 위해 첸나이공장의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인도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늘면서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인도에 진출한 완성차 업체들은 추가 구조조정을 고민해야 될 상황에 놓였다.

김동한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올해 4월 이후 인도 자동차 업계는 약 35만명의 근로자를 해고하는 등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현대·기아차 역시 신차 출시에도 불구하고 수요 부진과 인도 루피화 절하 등으로 인해 가시적인 실적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