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예산]
국가채무, 매년 GDP 2.1~2.7%씩 증가
고령화에 복지 지출 급증…일본형 재정적자

정부가 29일 발표한 ‘2020년 예산안’과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앞으로 대규모 재정적자가 만성화될 것임을 보여주었다. 매년 국가채무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2%포인트(P) 이상 늘어나는 구조가 되는데, 이는 2000년 이후 국가채무가 매년 평균 1.0%P 안팎으로 늘어나던 안정적인 부채 관리 기조에서 이탈한 것이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2020년 예산안’과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 계획’을 의결했다. 2020년 재정지출은 513조5000억원, 재정수입은 482억원으로 각각 올해 본예산 대비 9.3%, 1.2%씩 늘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의 어려운 여건을 엄중히 인식하고 경제 하방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 예산"이라며 "올해와 내년의 어려움을 재정을 통해 보강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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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재정수지 적자폭 GDP 1.3%→3.8% 급등

정부는 2021년 이후 재정지출을 공격적으로 편성했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정부는 2021년 재정지출을 546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5% 늘어날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2022년(575조3000억원)과 2023년(604조원)은 각각 5.2%와 5.0% 늘어난다. 금액으로 따지면 2020년 43조9000억원, 2021년 33조3000억원, 2022년 28조5000억원, 2023년 28조7000억원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수입 증가폭은 지지부진할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2021년 재정수입은 505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증가율은 4.9%다. 2022~2023년은 각각 4.7, 4.8%씩 재정수입이 늘 것으로 기재부는 봤다. 금액으로 증가폭을 따지면 매년 23조6000억~25조3000억원이다. 내년부터 4년간 지출은 연 134조4000억원 늘어나는데, 수입 증가 규모는 연 78조4000억원에 그친다. 연간 56조원 규모로 초과 지출이 이뤄지게 되는 셈이다.

정부의 재정수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관리재정수지는 2019년 GDP 대비 1.9% 적자에서 2020년 3.6% 적자로 뛴 뒤, 2021~2023년 해마다 각각 3.9%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정부는 봤다. 관리재정수지는 2010~2018년 연평균 GDP 대비 1.3% 적자였다. 세입과 세출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만성적 재정 적자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올해 국가채무(중앙정부 부채·D1 기준)는 37.1%로 작년(36%)보다 1.1%P 늘어나는데, 내년에는 39.8%로 2.7%P 높아진다. 2021~2023년에는 각각 2.3%P, 2.1%P, 2.2%P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재정적자가 이어지면서 해마다 GDP 대비 국가채무가 2%p 이상 높아지게 됐다.

홍 부총리는 "재정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 성장 경로를 복귀시키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당분간 재정 수지의 마이너스 폭이 커지더라도 어쩔 수 없이 감내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되기 전에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게 낫다는 얘기다.

◇저성장·초저물가에 세입 전망 어두워

문제는 저성장과 그에 따른 저물가로 세입 전망이 어둡다는 것이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가계와 기업의 수요가 줄어 물가상승률도 낮아진다. 이 경우 경상성장률이 큰 폭으로 낮아지기 때문에, 세수 증가폭도 내려간다. 정부는 2021~2023년 경상성장률을 연 3.8%로 보고 세수 전망치를 계산했다.

그런데 최근 ‘제로 수준’에 가까운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연 3%를 넘기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반적인 물가수준을 나타내는 GDP디플레이터(명목GDP와 실질GDP의 차이)는 2018년 0.3%로 급락했다. 2019년에도 0.1%를 기록할 것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전망했다. 2011~2017년 평균은 연 1.5%였다. 경기가 좋아져 2.6% 안팎인 잠재성장률 전후로 실질성장률이 높아져도, 현재 저물가 기조가 이어질 경우 경상성장률은 3%를 넘기기 어렵다.

지출 증가 중 상당수가 고령화에 따른 의료·복지 분야 라는 것도 문제다. 향후 계속해서 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0년 예산안에서 보건·복지·노동 분야 지출은 181조6000억원으로 올해(161조원)보다 12.8% 늘어났다. 기초연금 지출이 11조5000억원에서 13조3000억원으로, 노인일자리 사업이 8000억원에서 1조2000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고령자 생활 보조 예산이 늘었다. 또 건강보험 국고지원과 의료급여 확대로 관련 예산이 14조2000억원에서 16조원으로 1조8000억원 증가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2016년 발간한 ‘일본 재정정책 추이와 전망’ 보고서에서 "일본은 1999년 이후 연금, 의료, 개호(간호서비스) 등에서 사회보험 지출을 보전하기 위한 재정 보조가 큰 폭으로 늘었다"며 "90년대 후반 이후 재정 지출 증가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일본 정부는 1990년대 낮아진 잠재성장률에 대한 인식 하에서 억제된 예산을 편성하려고 노력했지만 사회보장 관련 지출 증가로 재정적자 증가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200%가 넘는 국가부채를 떠안게 된 주된 원인이 고령화에 따른 사회복지 지출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국가채무 비율 증가 속도가 정부 예상보다 훨씬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경우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의심이 생기면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자산인 우수한 대외신인도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도 "국가 채무 비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채무 증가 속도"라며 "이를 유념해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