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조성욱(55)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지명되면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가 또다시 공정위 수장을 맡게 됐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공정위 업무에서 부차적인 것에 가까운 기업지배구조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 후보자가 결국 ‘조용한 김상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조 후보자는 지난 1994년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임용된 뒤 25년간 줄곧 학계에서 자리를 지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주로 연구했다. ‘미국과 일본의 경영진 보상과 인센티브: 사업 구조와 거버넌스에 미치는 영향(Management incentive compensation in the U.S. and Japan : product market structure and governance effects)’이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 교수가 해외 1급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은 모두 기업 지배구조에 관한 것이다. 1999년 미 매사추세츠대(MIT)가 발간하는 경제통계평론(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에 게재한 논문에서는 기업이 경영진에게 주는 스톡옵션, 상여금 등을 이용해 경영진이 경쟁 기업과 공모하도록 유도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미 로체스터대에서 발간하는 금융경제학회보(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에 2003년 게재한 ‘기업 지배구조와 기업 이윤’ 논문은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 원인으로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와 그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지목했다.
이후에도 주로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연구를 내놓았다. 한국에 돌아온 직후 1997~2003년 KDI 법경제팀에서 재벌에 대한 정부 정책과 경쟁 정책을 조언하고 평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2002년 ‘외환위기 이후 재벌구조 변화에 대한 실증분석’, 2007년 ‘정부·정치와 기업지배구조:경영진으로의 인적교류를 중심으로’를 각각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관련 발표한 논문은 지난 2016년 한국재무학회 학술대회에서 공개한 ‘주주 환원정책을 통한 기업지배 구조의 개선은 가능한가?’였다.
조 후보자는 대외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었다. 2005년 서울대 경영대 첫 여성 교수로 임용되면서 화제를 모았지만, 서울대 학내 언론에도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였던 지난 2003년 서울대 법대 첫 여성 교수로 임용됐던 양현아 교수가 서울대 안팎에서 여성 인권과 관련해 목소리를 높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다만 국무조정실 정책평가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자문위원회에서 오랫동안 자문위원직을 맡았었다.
본격적인 대외 활동은 지난 2013년 4월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임명된 것이 처음이다. 지난 2014년에는 금융감독원 부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2018년 11월부터는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을 맡고 있다. 정치와 연을 맺은 것은 KDI 재직 시절인 지난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인수위원회 자문위원(경제분과)을 맡은 것이 거의 유일하다.
조 후보자는 김상조 정책실장 등과의 학계 인연이 눈길을 끈다. 김 실장은 1981년에, 조 후보자는 1982년에 서울대에 입학했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과는 고려대 경영대에서 함께 재직했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결국 조 후보자가 공정위 내에서 ‘조용하고 내성적인 김상조’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가 최우선 목표가 될 것"이라며 "김 실장이 올해 초 밝힌 2019년 업무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공정위 업무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정위 일각에서는 불만 어린 기류도 있다.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 본연의 업무는 담합 적발, 기업 합병 시 경쟁 제한성 심사 등 공정경제 실현에 있다"며 "기업 지배구조는 공정위 업무에서 부차적인 것이고, 실제 정책 수단도 많지 않은데 공정위의 ‘본업’은 뒤로 밀리는 형국"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