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S팀'. 석 달쯤 전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에 신설된 태스크포스(TF)팀이다. 10명 남짓으로 구성된 이 생소한 이름의 팀이 맡은 과제는 전 세계를 뒤져 생산 외주 공장을 찾는 것이다. 'EMS'(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s)가 바로 외부 업체로부터 수주해 전자 제품 생산만 전담하는 업체를 뜻한다. 삼성전자 가전사업부의 제품을 대신 만들어 줄 공장을 찾는 팀인 것이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최고 제조 기업인 삼성전자의 '제조 시스템'이 또 한 번 대변신을 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대부분 제품을 국내외 '삼성전자 공장'이 만들었다. 하지만 이젠 아예 '제조를 잘하는 기업'을 찾아 생산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생산 시설 하나 없이 세계 최고 스마트폰 업체의 반열에 오른 애플식(式) 모델인 셈이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EMS팀은 가전제품 중 저가형 제품 일부를 해외에 위탁 생산을 맡길 공장을 알아보는 것으로 안다"고 1일 밝혔다. 추진 단계이지만 실제로 위탁 생산에 돌입할 경우 삼성전자는 사실상 연구·개발과 디자인, 마케팅과 판매에 집중하고 제품 생산은 외주에 맡기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변신이 성공한다면 국내 상당수 제조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엔 우리 기업이 한국에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직접 생산했다. 인건비가 높아지자 중국·베트남 등으로 옮겨갔는데 앞으로는 아예 위탁 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제품 기획과 개발, 판매 등에 더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EMS팀은 요즘 수시로 중국·베트남·말레이시아 등의 해외 현지 공장을 돌아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샤오미의 공기청정기를 생산하는 EMS 공장에 '삼성 제품을 생산할 의향이 있는지' 문의했고, 웅진코웨이의 공기청정기를 생산하는 공장까지 둘러보는 등 직접 찾은 공장만 20곳이 넘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1차적으로 중국 쪽 공장이 유력한 후보인 것으로 안다"면서 "상(上)냉동·하(下)냉장 방식의 2도어 냉장고, 소형 통돌이 세탁기 등이 유력한 EMS 대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로 해외에서 수요가 높은 저가(低價) 제품군들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TV·스마트폰 등 고부가가치 제품은 직접 제조하고, 해외에서 생산하는 일부 저가 가전에 한해서만 EMS 방식 적용을 검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통상 위탁 생산 방식은 세 가지로 나뉜다.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은 주문자가 개발까지 마친 뒤 하도급 업체에 넘겨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생산자 개발 생산'(ODM)은 디자인부터 제품 생산까지 하도급 업체가 자체 진행하고, 판매만 주문자가 한다. EMS는 생산 방식만 놓고 보면 OEM과 비슷하지만, 각자 기술력을 쌓아온 전문성 있는 업체들이 제품 생산에만 집중하는 형태라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용도 최대한 낮출 수 있다.

◇EMS로 바꾸면 2500억원 더 벌 것

지난해 삼성전자는 저가 소형 냉장고 2개 모델에서 적자를 냈다. 비싼 제조 간접비용 때문이었다. 제조간접비란 전기·수도비, 토지 임대료, 보험료, 복리후생비 등을 말한다. 손익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EMS로 위탁 생산하면 간접비가 줄어 흑자로 전환하고 2500억원 정도를 더 벌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탁 생산을 하면 운영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제조 업체 특성상 다양한 제품을 직접 생산할 경우 매번 공정을 전환해야 하고, 부품도 다양하게 써야 해 효율이 떨어지고 수익성도 나빠진다. 특히 저가 제품은 하이얼·메이디·거리 같은 중국 가전 업체들의 제품과 경쟁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저가 제품 중심으로 EMS 사업화를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가전에서도 비스포크 냉장고 등 프리미엄 가전은 국내 광주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고, 저가 제품만 해외에 위탁 생산하는 '투 트랙'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용 절감은 삼성전자가 오랜 기간 공들여온 작업이다. 1991년 말레이시아 공장을 시작으로 중국·베트남·폴란드·멕시코·미국 등 해외 9개국에서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현지 판매용 중저가 제품이 주력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장 해외 이전이 1차 비용 절감 과정이었다면, 해외 위탁 생산은 2차 비용 절감"이라고 말했다. 가전사업 부문은 삼성전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 정도로 추정되며, 비주력 사업에 가깝다. 경쟁 제품이 워낙 많아 차별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기도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생활가전사업 부문이 EMS 사업화의 '테스트 베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전 제품군을 한꺼번에 위탁 생산할 경우엔 한국의 핵심 경쟁력인 제조 생산 노하우를 잃을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저부가가치 제품만 위탁하는 것은 비용은 낮추고 효율성은 높여 경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식(式) 위탁생산

미국 IT 기업 애플은 제품을 만드는 생산 공장이 없다. 대신 대만 폭스콘 등에 의뢰해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고 있다. 애플이 제품 기획 및 개발을 하면, 폭스콘이 생산하고, 다시 애플이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폭스콘과 같은 업체를 'EMS'(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s)라고 부른다. 생산·제조 기술력을 갖춘 전자제품 생산 전문 기업이란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