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광화문의 A약국은 동화약품의 연고 제품 '후시딘'을 4500원에 팔았다. 4000원이었던 가격을 최근 500원 올린 것이다. 약국에 가격 인상 안내문은 없었다. 가격을 올린 이유는 동화약품이 약국에 파는 공급가를 3300원에서 올 1월 3700원으로 10% 올렸기 때문이다. 이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는 "작년에 샀던 재고는 예전 가격 그대로 모두 팔았고, 이젠 비싸게 들어온 후시딘을 파는 만큼 일반 판매 가격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약사는 "주변에 다른 곳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후시딘을 5000원 받고 판다"고 했다.

가정마다 한두 개씩 두는 상비약의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올 1월에 광동쌍화탕(제약사 광동제약)이 공급가를 15% 올린 이후 2월엔 마데카솔케어(동국제약), 4월엔 까스활명수(동화약품)와 소화제 '훼스탈플러스'(한독), 6월엔 두통약 '펜잘큐'(종근당)의 공급가가 올랐다. 인상 폭은 10~20% 정도다. 이달에도 한국얀센의 해열진통제 타이레놀 공급 가격이 15% 인상됐다. 공급 가격이 오른 만큼 올 하반기엔 약국들이 연쇄적으로 판매가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상비약은 의사 처방을 받지 않고도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다.

◇후시딘에서 타이레놀까지… 상비약 가격 연이어 두 자릿수 인상

일반의약품은 5000종 정도가 있고, 대부분 약국에서 판다. 심야에 급하게 필요한 의약품인 해열진통제나 감기약·소화제 등 13종은 편의점에서도 판다. 상비약은 소비자들이 빈번하게 구매하기보다는 1년 한두 차례 사는 게 보통이다.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 저항이 덜한 편이다.

대부분의 제약사는 약국에 주는 공급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약국은 공급 가격에 일정 이윤을 붙여 판다. 약국마다 가격이 차이가 나는 이유다.

연이어 오른 상비약은 모두 각 제약사의 주력 제품이자 소비자 사이에 인지도가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4월에 약국 공급 가격이 20% 오른 까스활명수는 동화약품의 전체 매출에서 20%를 차지한다. 한독의 소화제 훼스탈플러스는 1957년 출시된 이후로 연간 100억원 안팎의 매출을 꾸준히 올리는 상비약이다. 이번에 한독은 공급 가격을 2000원에서 2300원으로 올렸다. 약국에서 2500원대에 팔리던 제품은 현재 3000원 이상에 팔리고 있다.

동화약품의 후시딘만 해도 1980년에 처음 나와 국내 연고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동화약품은 후시딘 하나로 연간 2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다.

◇5~10년 안 올리다 대폭 올려

제약사들은 가격 인상 이유로 "물가 상승에 따른 원재료와 인건비 인상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한독의 훼스탈플러스는 10년 만에 값을 올렸다. 다른 제품들도 약 4~5년간 가격 변동이 없었다. 지난해 소비자 물가는 2015년과 비교해 4.45% 상승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상비약은 10% 가격이 올라도 소비자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가격을 올려도 판매량이 줄지 않는 것을 제약사가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0~20%를 올려도 판매 가격이 100~ 500원 정도 인상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약업체로선 이런 스테디셀러는 가격을 올리면 그만큼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

매년 찔끔찔끔 공급가를 올리면 일선 약국은 매번 판매가를 조절해야 하니 싫어한다. 하지만 한꺼번에 올리면 약국 입장에서도 큰 저항 없이 따라온다.

통상 4~5년마다 갑자기 가격을 올리고 한 번 올릴 때 최대 20%까지 올리는 이유다. 예컨대 까스활명수는 공급가를 650원에서 850원으로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일선 약국에서는 대부분 800원 하던 가격을 1000원으로 인상하는 분위기다.

제약사들이 스테디셀러인 이런 상비약의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기 위해서 광고·마케팅에 쓰는 돈을 더 늘리는 것도 한 원인이다. 지난해 의약품 광고 건수는 3668건으로 2014년(2762건)에 비해 33% 늘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상비약 공급가를 줄줄이 올린 제약업체들은 올해 모두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며 "브랜드만 보고 상비약을 구매하는 소비 풍토가 이런 방식의 인상 마케팅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