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에서 M15 공장 준공식을 열었다. 이 공장은 SK하이닉스가 총 20조원을 쏟아붓는 낸드플래시 메모리(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보존되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이다. 여기엔 4000대가 넘는 반도체 생산 장비가 들어섰다. 하지만 국산은 2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일본과 미국, 네덜란드산이다. 최첨단 장비를 국내 업체가 못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 1위 반도체 국가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소재와 장비는 다른 나라에 의존하고 있다. 2017년 기준 국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8.2%, 소재 국산화율은 50.3%에 불과하다. 특히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일본 의존도는 50%에 육박한다. 2일 청와대는 이번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과 같은 사태를 막는 대안으로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 추진을 거론했지만, 반도체 업계는 "당장 실현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라며 난색이다.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수백 종의 소재는 제조사만 달라도 미세하게 성능이 달라진다. 같은 품목이라고 해도 다른 브랜드의 화학물질을 구매해 당장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화학물질은 바꿀 때마다 전체 공정에 대한 조정도 필요하다. 여기에 일본이 규제 강화한 포토 레지스트의 경우 전 세계의 90%를 일본 기업이 생산한다. 일본 기업을 제외하면, 삼성이나 하이닉스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에 쓸 만한 포토 레지스트를 만드는 곳이 없다. 국산화에도 막대한 시간이 필요하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소재 개발은 오랜 노하우에 기반한다. 일본은 100년 넘게 정밀화학 소재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해왔다.

이런 소재·장비 산업 특성 탓에 우리 기업들은 해외 의존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은 미국(44.7%)과 일본(28.2%)이 장악하고 있다. 한국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3.6%에 그친다.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장비 10대 기업 중 일본 기업은 5개, 미국 기업은 3개, 네덜란드 기업은 1개, 한국 기업은 1개다. 한국의 일본 의존도는 높은 편이다. 작년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제조용 장비는 6조1211억원으로 전체 반도체 장비 수입 중 33.8%다.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도 전체 수입 물량 중 34.6%를 일본에서 들여온다. 일본 의존도가 가장 높은 것은 이번 수출 규제가 되는 포토 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다. 이 소재에 대한 한국의 일본 의존도는 90%가 넘는다. 일부 국산화에 성공한 소재로 꼽히는 불화수소(에칭가스)도 실은 일본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합성·정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