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들한테 1억원까지 대출도 해줘요. 캐피털로 돈을 빌려 쓰게 하고, 이자는 주류업체가 대신 내주는 식이죠. 맥주·소주 1~2박스 서비스로 주는 차원이 아니라니까요." 20년 넘게 주류업계에 종사한 '베테랑 영업맨' A씨는 국세청이 추진하던 '주류 리베이트 쌍벌제'(주류 거래 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가 미뤄진 진짜 속사정을 털어놨다.

국세청은 지난 5월 '주류 리베이트 쌍벌제'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이달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가 최근 이를 무기한 연기했다. 주류 리베이트 쌍벌제란 술집에서 특정 브랜드 술을 쓰는 대가로 리베이트를 주고받을 경우 양쪽 모두를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업계와 관련 단체의 말을 종합하면, 이 제도에 제동이 걸린 이유는 술집 존폐가 걸릴 정도로 깊게 뿌리 박힌 리베이트 문화와 현실을 모르는 국세청의 탁상행정이 합쳐진 결과였다.

◇자사 생맥주를 팔아라…'작전조' 투입

생맥주나 소주, 위스키 등을 대량 공급하는 국내 주류 회사는 몇 군데 없으니 주류업체 영업의 세계는 그야말로 '피 튀기는 전쟁터'다. 영업직원 D씨는 자사 생맥주를 팔기 위해 '작전조'를 투입하기도 한다고 했다. "일단 타깃 맥줏집을 정하면, 회사원인 척하고 주류회사 영업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매일 밤 그 맥줏집에서 술을 마셔요. 그러면서 주인한테 '이 맥주 왜 이렇게 맛이 없느냐'며 불평을 늘어놓는 거죠. 매일 쏟아지는 불만에 '멘털'(정신) 흔들리는 맥줏집 주인에게, 정식 영업맨이 출동해 '생맥주 한번 바꿔보시죠'라며 제안이 들어가는 거죠." 이 직원은 "주류업계 영업사원들의 연기력은 '칸 영화제' 상 탈 수준"이라고 했다.

새로 생기는 생맥줏집은 출혈 경쟁을 해서라도 자사 브랜드 판매에 목숨을 건다는 설명이다. 생맥주는 20L 한 통에 4만원쯤 하는데 보통은 공짜로 10통을 주고, 서울 강남역이나 을지로 같이 맥주 수요가 많은 지역에선 300통까지 공짜 맥주를 준다고 한다. "공짜로 줄 맥줏값에 대해선 해당 매장에서 회식한 것처럼 회사 법인카드로 긁어버리기도 해요."

소주는 '세트 지원'이 기본이다. 소주 한 짝(30병)당 5000원씩 리베이트를 주는 것은 기본이요, 앞치마·메뉴판에 냉장고까지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영업사원 C씨는 "소주 판매량이 많은 곳엔 광고선전비를 통해 현금 지원을 한다"고 했다. 횟집이나 고깃집에 배너 광고를 세워둔 뒤, 광고비 명목으로 현금을 찔러 준다는 얘기다. 그러나 리베이트가 가장 활성화된 곳은 양주 시장이다. A씨는 "양주는 '1년에 1000박스 팔겠다' 약정서를 쓰면 3000만~5000만원을 한 번에 주는 선(先)집행 리베이트도 있다"면서 "대형 업소에선 양주 브랜드별로 이런 약정서 여러 개를 써서 2억~3억원 수익을 단번에 올리기도 한다"고 했다. 리베이트는 음성적이어서 전체 규모는 알 수 없다. 다만 지난해 국회 공청회(윤호중·김상희 의원 주최)에서 리베이트 추정 수치가 나왔다. 2008~2016년까지 9년간 양주 3사의 시장관리비용(접대비+광고선전비)은 1조4865억원으로, 연평균 1652억원이 리베이트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 것이다.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 배려 없는 탁상공론"

리베이트 문화는 불법이고, 거래 투명성을 위해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는 게 국세청 쌍벌제 도입 취지였다. 업계 일각에서도 리베이트 즉각 근절에 찬성 목소리를 냈다. 전국주류도매업중앙회는 "음지에 있던 리베이트 문제를 양지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주류 리베이트 쌍벌제로 건전한 주류 시장 질서가 확립될 것"이란 입장이다.

그러나 당장 피해를 볼 수십만 개의 주점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 없는 '탁상공론'이란 비판이 나온다. 부산에서 룸 6개짜리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E사장은 "맥주는 30병짜리 한 박스를 매달 70박스씩 써서 리베이트 42만원을 받고, 양주는 브랜드별로 합쳐 100만원쯤을 받는다"면서 "쌍벌제를 시행한다는 소식에 대출금 3000만원을 갚으라는 압박이 들어오고, 주류업체가 해준 냉장고도 다달이 7만원씩 사용료를 내라고 하니 당장 가게를 내놔야 할 판"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의 100평대 유흥업소를 10년째 운영하는 F씨도 "전체 매출의 30%는 리베이트 수익인데, 이 수익이 끊기면 서울 강남 상권에 있는 식당·술집들은 존폐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김춘길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회장은 "술 제조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지 않는 대신, 제조사가 공급하는 술값을 그만큼 깎아주는 식의 대책도 없이 무작정 리베이트를 없애겠다고 하니 전국 2만7000여개 유흥업소, 1만3000여개 단란주점, 47만여 개 외식업 음식점이 생존권을 위협받게 됐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충분한 의견 수렴 후에 재시행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재시행 시기를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의견을 듣고 부작용을 최소화하여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