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기업대출보다 손 쉬운 주택담보대출 위주 영업 관행
최종구 위원장, 취임 일성으로 고치겠다 했지만 별 변화 없어

"모든 은행이 가계대출 위주였던 국민은행화(化) 됐다. 이대로 두고 보는 것이 감독당국의 역할이 맞는지 심각하게 생각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017년 7월 26일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취임 일성으로 은행들의 전당포식 영업 행태를 작심하고 비판했다. 은행이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지 않고 별 어려움 없이 가만히 앉아서 쉽게 돈 벌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 같은 가계대출에 열을 올리는 걸 비판한 것이다.

국민은행은 원래부터 가계대출 비중이 높은 편이다. 가계대출 위주로 영업을 하던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하면서 지금의 국민은행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른 은행들이 기업대출 위주의 영업을 하던 1990년대에도 국민은행은 전체 대출에서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가까웠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3월 25일 경북 경산 자동차 부품업체 일지테크를 방문해 생산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문제는 2000년대 들어 다른 은행까지도 가계대출 비중이 높은 국민은행처럼 변했다는 점이다. 2년 전 기자간담회 때 최 위원장은 은행들의 구체적인 기업대출 비중 수치까지 소개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1999년 40.8%였던 기업대출 비중이 2016년 43.4%로 소폭 올랐는데, 같은 기간 우리은행은 96.8%에서 43.4%로, 신한은행은 74.1%에서 41.9%로, KEB하나은행은 72.8%에서 45%로 각각 감소했다.

최 위원장은 이 같은 통계를 소개하며 "은행 수익이 가계대출 분야와 주담대에 치중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은행이 영업 다변화를 해서 혁신 중소기업에 대출하는 등 다양한 자금 영역을 통해 수익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 위원장이 취임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가계대출 위주의 전당포식 영업에 의존하는 은행들의 영업 관행은 좀처럼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으로 4대 은행의 기업대출 비중은 대부분 40% 중반대에 그쳤다. 신한은행이 47.7%, 하나은행 45.8%, 우리은행 44.5%, 국민은행 44.2%로 나타났다. 최 위원장이 은행들의 영업 관행을 바꾸겠다고 질타한 2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치다. 2년 사이 기업대출 규모가 제법 늘어나기는 했지만, 가계대출도 못지않게 많이 증가하면서 비중 자체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금융위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동산 담보가 없는 중소기업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동산담보대출이나 지식재산권 담보대출 같은 제도를 내놨고, 수출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금융지원 제도도 발표했다.

취임 2주년을 앞두고 최 위원장이 최근 찾은 곳도 수출기업들이 모인 울산·경남지역의 제조업 현장이었다. 지난 27일 최 위원장은 울산시 울주군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 오토인더스트리를 방문해 수출 기업이 느끼는 금융 분야의 애로사항을 듣고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최 위원장은 "주력산업이 우리 경제의 근간이자 양질의 일자리와 혁신성장의 원천"이라며 "은행들이 주력산업 지원에도 각별한 관심을 쏟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은행 내부에서는 기업대출을 늘리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아예 대출 자체를 줄이고 있고,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자니 부실을 우려한 영업점의 일선 은행원들이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기업여신 담당 임원은 "수출 대기업의 대출 상담과 대출액이 최근 들어 모두 줄어드는 추세"라며 "기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생각보다 큰 탓에 투자를 줄이고 현금을 쌓고 있어 기업대출 자체도 늘어나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정부에서 아무리 기업대출을 늘리라고 재촉해도 일선 영업점의 은행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줬다가 부실이 발생하면 은행원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보증 지원을 늘리고, 정책자금을 투입하는 건 큰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은행장이 나서서 대출을 독려해도 앞에서만 고개를 끄덕이고 막상 현장에서는 전처럼 보수적인 대출 심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장의 은행원들에게 대출 부실에 따른 책임을 면책해주는 등의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